[가상화폐 10년] '피자 두 판' 값으로 결제한 비트코인 '432억'
전세계 금융시장을 숨죽이게 만든 가상화폐(암호화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10여년이 됐다.

비트코인은 아직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인물이 만든 통화 시스템으로, 2008년 10월31일 오후 2시10분께 암호학 전문가들과 아마추어 등 수백 명에게 전달된 사토시의 이메일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비트코인의 첫 채굴은 석달 뒤인 2009년 1월3일에 이뤄졌고, 2010년 5월22일 사상 처음으로 비트코인이 피자를 구매하는데 쓰였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개당 '0원'에서 시작해 작년 초 원화 기준으로 2800만원을 기록했다가 올 1월 현재 430만원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불과 1년 새 비트코인의 가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수직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 것이다.

디지털화폐의 미래를 뜨겁게 달군 비트코인의 지난 10여년을 <한경닷컴>이 되짚어 봤다.

◆[2009년-2010년] 0원이었던 비트코인… 최초의 실물 거래는 ‘피자 2판’

비트코인이 채굴된 후 첫 1년간은 '가치'란게 존재하지 않았다. 2009년에는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다. 비트코인의 창립자인 ‘사토시 나카모토’와 그 주변인들, 그리고 비트코인의 존재를 인지한 소수의 컴퓨터 개발자들만이 재미삼아 비트코인을 채굴해 거래한 게 전부였다.

2010년 2월, 세계 최초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트곡스가 탄생하며 비트코인에 본격적으로 '가치'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0년 한 해 비트코인 가격의 최고점은 2019년 1월 현재 시세의 ‘1만 분의 1’ 수준인 0.39달러(약440원)였다.

같은 해 비트코인을 이용한 최초의 실물 결제가 이뤄지기도 했다.

2010년 5월 18일 오전 12시 35분경, 인터넷 커뮤니티 ‘비트코인포럼’에 미국 플로리다에 거주중인 한 유저가 “1만 비트코인를 줄테니 파파존스 라지사이즈 피자 2개(당시 약 30달러)를 사줄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트코인을 받고 피자를 사주겠다는 사람이 등장했고 최초의 비트코인 결제는 2010년 5월 22일 그렇게 성사됐다.

당시 피자 2판을 대가로 지불한 1만 비트코인은 현재(1월 3일 기준) 432억6000만원 상당의 가치를 지닌다. 피자 두 판을 432억원에 구매한 셈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매년 5월 22일을 ‘비트코인 피자의 날(Bitcoin Pizza Day)로 지칭하며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해당 유저가 피자 2판을 얼마를 주고 샀는지 현재의 시세로 환산해보곤 한다.
[가상화폐 10년] '피자 두 판' 값으로 결제한 비트코인 '432억'
◆[2011년-2012년] 극비 문서 폭로한 '위키리크스', 현금 대신 비트코인으로 기부 받아

2010년 말,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주요국 극비 정부 문서들을 폭로한 위키리크스(WikiLeaks)가 돌풍을 일으키자 각국의 중앙 정부들은 위키리크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은행은 물론 위키리크스가 매년 100억원 상당의 기부금을 모으는 창구였던 페이팔(Paypal)마저 계좌를 동결했고, 위키리크스는 궁지에 몰린다.

그렇게 위키리크스는 중앙은행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모금 수단을 찾다가 비트코인을 대안으로 활용하게 됐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의 존재가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맞춰 비트코인 시세는 조금씩 상승하다 2011년 2월 처음으로 1달러(약1125원)를 넘긴다.

이로부터 4개월 뒤인 2011년 6월 15일, 위키리크스는 공식적으로 비트코인으로 기부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곧바로 수직상승해 같은 해 7월 29.6달러(약3만3000원)까지 급등한다. 하지만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곧바로 하락해 같은 해 11월, 2달러(약2251원) 수준까지 폭락한다. ‘15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이후 비트코인은 2013년 초반까지 기나긴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2013년-2016년]음지서 출발…’은밀한 거래수단’으로 활용되며 본격적인 변동장 시작

각국의 은행으로부터 계좌 동결 조치를 당한 위키리크스가 비트코인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이용하면 정부의 금융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비트코인은 '검은 돈'의 수요처로 급부상한다.

현재는 흔히 볼 수 있는 ‘비트코인 요구형 랜섬웨어(컴퓨터를 감염시킨 뒤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악성 소프트웨어)’가 2013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유다. 특히 이 당시 비트코인이 가장 많이 쓰이던 수요처는 마약 과 불법 무기 거래의 온상이었던 불법 웹사이트 ‘실크로드(Silk Road)’였다.
불법 거래의 온상이었던 딥 웹 '실크로드'(사진=해외 블로그 화면 갈무리)
불법 거래의 온상이었던 딥 웹 '실크로드'(사진=해외 블로그 화면 갈무리)
실크로드는 딥웹(Deep Web)의 일종으로 일반적인 인터넷 브라우저로는 접속이 불가능했고 토르(Tor) 브라우저를 사용해야만 접속이 가능했다. 실크로드의 회원 수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 이 수요 덕에 비트코인은 2012년 10달러(약1만1000원) 수준에서 2013년 100달러(약11만2000원) 수준까지 가격이 상승한다.

결국 미국 연방 수사국(FBI)이 발 벗고 나선 끝에 2013년 10월, 실크로드는 서버를 압수당하게 되고 이어 운영자인 로스 윌리엄 울브릭트도 체포되며 막을 내렸다.

이 사건 때문에 비트코인은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돼 불법 자금 거래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FBI는 대규모로 비트코인을 압수하게 돼 얼떨결에 당시 기준 전 세계 비트코인의 1.5%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비트코인 보유 기관’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상승세는 멈출 줄 몰랐다. 이 사건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존재와 사용처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캐나다에서는 비트코인 ATM기기가 최초로 등장했고 특히 중국 투자자들이 급격하게 유입되는 등 수요가 폭증했다. 결국 2013년 12월 비트코인 시세는 최초로 1000달러(약112만원)를 돌파했다.

비트코인 시세가 심각한 투기 양상을 보이자 중국 인민은행은 이 무렵부터 본격적인 ‘비트코인 제재령’을 내렸다. 연이어 2014년 2월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이자 당시 최대의 거래소였던 마운트 곡스는 해킹 사태로 파산하게 됐다. 비트코인 시세가 기나긴 침체기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침체기 가운데 중국의 비트코인 열풍이 오히려 확장되며 시장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왔다. 비트코인이 200달러(약22만5000원) 내외의 침체된 가격을 유지하던 2015년 무렵, 전 세계 비트코인의 80%가 중국 위완화로 환전 된다는 골드만삭스의 분석도 이를 뒷받침했다.

골드만삭스는 달러강세와 중국 경제 위기감으로 인해 중국인들이 자국 내 부동산이나 주식 대신 비트코인에 투자를 하는 것으로 추측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결국 비트코인 시세는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고, 2016년 말 재차 1000달러 선 근처까지 올라오게 된다.
[가상화폐 10년] '피자 두 판' 값으로 결제한 비트코인 '432억'
◆[2017년-2018년] 조금씩 양지로…전세계 최대 이슈로 뜨다

2017년에 들어서자 시세에 불이 붙으며 비트코인은 전세계 최대의 화두가 되기 시작했다.
같은해 1월 1000달러를 돌파한 비트코인 시세는 같은 해 3월 2000달러(약225만원)를 넘기고 8월 4000달러(약450만원)선마저 뚫으며 무섭게 상승한다. 이 무렵 국내에서도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일반인들에게로 번졌다.

2017년 9월,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공개(ICO)를 전면 금지했다. 모든 암호화폐 관련 자금 조달도 전면 차단하게 되면서 비트코인은 일시적으로 4000달러선 아래로 급락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전면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투기 열기를 막을 수는 없었고, 불똥은 이제 갓 비트코인 열풍이 불기 시작한 한국으로 튀기 시작했다. 중국 투자자들이 아직 규제가 없는 한국의 암호화폐 거래소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종의 ‘풍선 효과’였다.

2017년 10월, 비트코인 시세는 최초로 5000달러(약562만원)를 넘긴 데 이어 11월에는 9000달러(약1025만원)선마저 뚫으며 연이은 폭등 행렬을 이어갔다. 이와 맞물려 각종 결제 서비스들이 출현하고 비트코인을 받겠다는 가게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며 2017년 12월 꿈의 2만달러(약2249만원)선을 넘보게 된다.

결국 우리나라 정부는 암호화폐 긴급대책을 발표하고 미성년자와 외국인들의 투자를 막는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가 막히자 국내 암호화폐 시장이 갈라파고스화(자신들만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되면서 비이성적인 투기 열기에 더욱 불을 지폈다.

우리나라 시장이 고립되면서 '세력들이 가격 조작을 하기 용이한 환경'이 됐고, 이에 따라 국내 가격과 해외 가격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 것. 특히 이 당시 국내 시세가 해외 시세보다 많게는 50%이상 높아지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생기며 국내 비트코인 시세는 해외 시세와 별개로 지난 1월 2800만원까지 상승했다.

결국 2018년 1월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가상증표(암호화폐를 빗대어 이른 말) 거래소를 폐쇄하고 이를 광고하거나 거래하는 자들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을 긴급 발표했다. 이 날 하루동안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100조원 가까이의 금액이 증발하며 또다른 암호화폐 시장의 암흑기를 촉발했다.

이를 계기로 다른 국가에서도 본격적인 암호화폐 제재가 가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와 시카고선물거래소(CBE)가 2017년 12월부터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도입한 터라 하락장 투자가 용이해지게 되며 비트코인 시세는 연이은 폭락을 이어갔다.
[가상화폐 10년] '피자 두 판' 값으로 결제한 비트코인 '432억'
◆[2019년 현재] 시장은 침체기지만…“기관투자자들은 진입 대기 중”

암호화폐 시장이 긴 침체기에 들어섰고 비트코인 시세는 전 고점 대비 80%정도 폭락한 상태지만 전통 금융권의 기관투자자들이 본격적인 진입을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비트코인이 완전한 '양지'로 올라오는 과정의 마지막 관문이 될 전망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회사 인터콘티넨탈익스체인지(ICE)가 만드는 암호화폐 플랫폼 ‘백트(Bakkt)’는 올해 초 비트코인 선물 상품 출시를 준비중이다. 지난달 보스턴 컨설팅 그룹, 마이크로소프트 벤처 등 12개 파트너사들로부터 1억8250만달러(약2053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미국의 나스닥(NASDAQ) 역시 비트코인 선물 시장을 준비중에 있으며 지금까지 피델리티, 골드만삭스 등도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시장 진입 의사를 밝혔다.

비트코인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의 승인 여부다. 결국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을 위해서는 규제 당국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해서다. SEC는 반에크(VanEck), 솔리드엑스(SolidX) 등의 자산운용사들이 신청한 비트코인 ETF 상품의 승인 여부 발표를 올해 2월 27일로 연기한 바 있다.

10년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비트코인 시세를 움직이는 주체는 '음지의 세력들'에서 '각국 규제당국과 기관투자자들'로 바뀌었다. 비트코인이 태생적 한계에도 완벽한 양지로 넘어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