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민주화’ 일환으로 밀어붙이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의 경영구조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기업들에 ‘선진 지배구조’라며 적극 권유했던 지주회사 체제가 이제는 ‘편법의 온상’으로 몰리며 온갖 제재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지주회사들이 중장기 사업계획 수립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부가 요구하는 가이드라인을 맞추는 데 골몰하는 처지다.

이런 가운데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신현한 연세대 교수의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가치’ 보고서는 기업지배구조를 보는 정부의 시각 교정이 시급함을 일깨워 주목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주회사 48곳 가운데 개인 대주주는 28곳, 일반 주주는 25곳에서 지주회사 전환 후 지분가치가 높아졌다. 지주회사가 총수일가에만 이득이라는 세간의 비판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일반지주회사와 사업회사의 합산 시가총액도 1년 뒤 5% 이상 증가한 곳이 28곳에 이른다.

이 같은 실증 사례는 지주회사가 소유·지배구조를 단순화해 투명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지배구조 개선의 궁극적 목표가 소유·지배 투명화와 기업가치 제고라면, 지주회사를 규제하기보다 오히려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책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이면 누구에게도 득이 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갈라파고스 규제’로 꼽히는 게 국내 지주회사 제도다. 미국·유럽은 지주회사의 법적 정의(定義)가 없고, 일본은 행위 규제가 없는데 한국에는 다 있다. 선진국들은 지배구조에 관한 한 사전 규제를 풀되, 사후 감독과 시장에 의한 감시를 강화하는데 한국은 거꾸로다. 총론에서 기업 투자의욕 저하를 걱정하면서, 각론에선 투자를 더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닌지 정부가 되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