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히잡을 벗어던지는 사우디 여성들
지난 24일 0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거리에서는 히잡을 쓴 여성들이 운전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목격됐다. 사우디 건국 86년 만의 쾌거다. 이런 변화는 8억5000만 명에 달하는 이슬람 여성 소비자가 창출하는 글로벌 시장 판도에 지각변동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다음 단계는 사우디 여성들이 히잡을 벗어던지는 일일 것이다.

사우디는 이슬람권에서도 여성의 사회 참여와 인권이 가장 억눌린 사회였다. 2015년 12월, 국제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당시 압둘라 왕이 여성의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부분적으로 인정할 때만 해도 짓눌린 여성들의 권리와 인권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33세의 젊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주도하는 ‘사우디 2030 비전’에 따라 아랍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고위 성직자 셰이크 압둘라 알 무트라크가 여성은 더 이상 검은 망토인 아바야를 입지 않아도 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직후, 빈 살만 왕세자는 히잡 착용을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겠다는 혁신적 구상을 내비쳤다. 여성들에게 축구경기 관람이 허용됐고, 사우디 최대 여자대학인 프린세스 누리 빈티 압둘 라흐만대 콘서트홀에서 열린 세계적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 야니의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남녀 관객이 어울려 음악을 감상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전달됐다. 몇 해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20세기 이후 이슬람이 여성을 억압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만든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히잡의 강제 착용이었다. 히잡은 형태와 지역에 따라 종류가 여러 가지다. 얼굴까지 완전히 가리고 망사천을 통해 세상을 보게 하는 아프가니스탄 일부 지역의 부르카부터 두 눈만 겨우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사우디의 니캅도 있다. 얼굴과 몸 전체를 검고 긴 천으로 가리는 복장은 아바야라고 부른다. 아바야를 입은 여성은 입 주변에 따로 분리된 작은 천을 열고 닫으면서 불편하게 식사를 한다. 사실 이런 복장 형태는 이슬람 율법과는 상관없는,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덮어씌운 돌연변이다. 57개 이슬람 국가 중에서 히잡을 법률로 강제하는 나라는 사우디와 이란 정도다. 이들 국가에서는 외국인도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

사우디에 뒤질세라 경쟁국인 이웃 이란도 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란에서도 여성의 경기장 관람이 허용됐고, 종교경찰은 더 이상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체포하거나 단속하지 않는다. 히잡 착용의 완전한 자유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분명 진전된 사회적 변화다.

근대사를 살펴보면, 여성의 정치 참여가 유럽 못지않게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은 이슬람 세계였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사실이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파키스탄에서도 베나지르 부토 여사가 1988년과 1993년 두 번이나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민선 총리에 취임했다. 말년에 극우파의 암살로 슬픈 운명을 마감했지만, 세계를 향해 강한 여성 지도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웃 방글라데시에서는 유독 여성 총리가 정치적 파워를 과시한다. 민족주의당 총재 칼레다 지아 여사가 1991년과 2001년 두 번이나 선거를 통해 민선 총리가 됐고, 현재는 또 다른 여성 정치인인 셰이크 하시나 여사가 총리직을 맡고 있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도 메가와티 여사가 2001년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 됐다. 터키는 서구화가 비교적 진전된 이슬람 국가로 1993년 탄수 칠레르가 여성 총리로 집권했다. 이란에도 여성 부통령과 수십 명의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이 있다. 보수적인 아랍 국가들에서도 최근 장관과 국회의원 등 공직에 상당한 여성 파워가 형성되고 있다.

이슬람 국가 여성의 사회 참여와 정치활동은 서구사회에 비해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민도나 교육열, 경제 수준 향상에 따라 급격한 사회 변화가 감지된다. ‘이슬람은 여성을 억압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이들 8억5000만 명의 이슬람 여성이 만들어낼 새로운 시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