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한·중 통화스와프, 관계 개선 신호 아니다
안갯속에 가려져 있던 한·중 통화스와프가 재연장됐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은 바 있는 우리로서는 외환보유액이 많다고는 하더라도 2중, 3중으로 안전장치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국제적인 눈총을 받고 있는 중국도 잃을 게 없는 결정이었다고 본다. 작금의 외교적 어려움 속에서도 스와프 재연장을 이뤄낸 정부 당국자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중국의 대외 정책 결정이 엄청나게 실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직시했으면 한다.

경제가 커 가면 자연히 자국 화폐 국제화에 나서게 된다. 중국이 통화 국제화에 나선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나기 직전인 2007년부터였다. 본격적인 경제 발전에 나선 지 30년이 됐고, 경제 규모도 3조달러에 육박했다. 외환보유액은 1조달러를 넘어섰다. 경제 규모에 비해 외환보유액이 과다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때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자연히 외환보유액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정상적 단계에서의 지속 발전에 관해 관심이 높아져 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대비책이 더욱 절실해졌다. 결국 위안화 국제화가 국가 정책으로 자리잡게 됐다.

이후 홍콩에서의 딤섬본드 기채 허용, 동남아시아 무역에서의 위안화 결제, 역외 위안화 직거래시장 개설,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국제 금융기구 출범 및 출연 주도,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중국형 국제결제시스템(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 구축, 위안화의 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SDR) 편입, 그리고 위안화 활용 신(新)실크로드 프로젝트 추진 수순으로 진행돼 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집권과 함께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세계 실물경제에서의 중국 비중은 이미 14.8%(2015년 기준)나 된다. 하지만 올 상반기 현재 위안화는 세계 결제시장(비중 2%로 5위 화폐),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885억달러로 전 세계 비중 1% 미만) 등의 면에서 미흡하다고 판단되고 있다.

결국 중국으로서는 각종 국제 거래에서 위안화를 더욱더 활용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의 대중(對中) 투자, 중국 기업의 해외 투자, 국제 협력 투자에서의 위안화 활용 등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으로 현재 36개국과 맺고 있는 3조3000억위안(약 50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주목하고 있다. 무늬만 국제화돼 있는 위안화를 현실로 끌어들이는 충분한 방안의 하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측면에서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재연장은 통화스와프 체제 활용을 통한 위안화 국제화에서 포기할 수 없는 카드였다고 본다. 통화스와프 규모 및 비중(3600억위안으로 11%)뿐 아니라, 이미 서울에 위안화 직거래시장이 개설돼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중국 교역의 7%, 투자의 3% 이상을 차지하는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 기대처럼 사드 사태가 풀릴 수 있다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간 협상은 철저하게 당사국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로 결정된다. 특히 중국과의 협상에서는 앞으로도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고 있다. 그것이 정치외교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다르지 않다. 이번에도 단순히 통화스와프 재연장에 만족할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잘 활용해 한·중 경제협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확보된 위안화 활용 쿼터이니만큼 우리의 예지를 모아 실질적인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이 포함된 동남아 국가들과의 3각 무역이라든지 중국 내수 시장 진출 등 각종 거래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국력, 우리의 전략적 가치가 아닐까 한다.

정영록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