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야심 없었지만 北주민에 연민…와인·클럽·토론 즐긴 자유사상가"
FT 심층분석서 "美·中, 대북 '고립주의' 외교 전략 재고해야" 제언

외신들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을 연일 톱기사로 다루며 촉각을 세우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시아 온라인판 톱기사에 '김정남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Kim Jong Nam)'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이번 사건과 김정남의 과거 행적을 조명했다.

WSJ은 김정남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면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이 더 깊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김정남이 정치적 야심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반면, 포르투갈 와인과 페라가모 로퍼를 좋아하고 아시아 전역의 나이트클럽을 드나들며 마음대로 살아왔다고 소개했다.

김정남의 등에는 보통 정치인과는 거리가 먼 용 문신도 새겨져 있었다.

또한 WSJ는 지인들의 입을 빌려 김정남이 5개 언어를 구사했으며, 국제 현안에 관해 토론하기를 즐겼다고 전했다.

특히 김정남은 최근 유럽에서 빈번해진 테러를 심히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은 김정남이 유학하며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페이스북 계정에는 2015년 파리 테러 이후 유행한 프랑스 국기 문양 프로필 사진도 있다.

이 같은 점에 비춰볼 때 김정남의 성향은 정치 지도자보다는 일정한 지성을 갖춘 자유사상가(freethinker)에 가까우며, 사실상 북한 체제와 어울린다고 보기 어렵다.

김정남의 한 지인은 WSJ에 "그는 자신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지적인 자유사상가였다"며 그가 독재자의 손자이자 아들이라는 사실을 불편해했고 생전에 "북한 인민이 안쓰럽다"며 통일을 바랐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안을 심층 분석하는 '빅 리드(Big Read)'란을 김정남 암살 사건에 할애했다.

FT는 이번 암살 사건을 계기로 그간 미국과 중국이 시행해온 고립주의 외교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신문은 "이번 사건과 그 안에 깊이 감춰진 의도는 현 북한 정권의 속성에 대해 유익한 교훈을 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엄격한 제재를 통한 경제·외교적 고립 전략이 작동하지 않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FT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북한 경제를 억압해 정권을 약화하려는 전략을 중단하고,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존 델러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도 소개했다.

AP통신 역시 김정남 암살 사건 수사 상황을 속보로 전하며 관련 기사를 쏟아 내고 있다.

통신은 김정남 암살의 배후가 김정은이었는지 연인 혹은 범죄 조직이었는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를 둘러싼 루머가 무성하다고 보도했다.

또한 별도 기사를 통해 북한의 '백두혈통'을 소개하면서 만일 북한 공작원이 김정남을 암살한 것이 사실이라면 백두혈통 신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아울러 세계 주요 언론들은 북한 국적 신분증을 가진 용의자가 17일 밤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되는 등의 수사 속보도 빠뜨리지 않고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gogog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