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닉슨, 탄핵 전 사퇴…성추문 클린턴은 상원 부결 '구사일생'
실제 사퇴로 이어지는 경우 대부분 개도국…사유 '부정부패' 가장 많아


세계 각국에서도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국가지도자들이 탄핵으로 물러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가수반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가 실제 사퇴로 이어지는 경우는 선진국보다는 대부분 동남아·중남미 등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럽과 북미 등 선진국들은 오랜 기간 엄격한 사법체계를 발전시켜오면서 정치 지도자들이 탄핵에 이를 만한 행위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선진국들은 오래전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킨 뒤 타협의 정치문화도 그만큼 발전해 실제 탄핵이 이뤄지기 전 정치적 해법을 마련해 역사적 오점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호세프, 브라질서 두 번째 탄핵…에콰도르에선 기행 일삼다 탄핵당하기도

의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돼 국가수반이 축출당한 가장 최근 사례는 남미 최대 경제국 브라질이다.

지우마 호세프는 2010년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최악의 경제난과 부패 스캔들로 지지도가 급락한 가운데 지난 5월 12일 탄핵심판 절차개시를 촉구한 의견서가 상원에서 채택되면서 직무가 정지됐다.

이후 8월 31일 상원은 호세프 탄핵안을 전체회의에서 찬성 61표·반대 20표의 표차로 통과시켰다.

전체 상원의원 81명 가운데 3분의 2인 54명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안이 가결되는 상황에서 비교적 여유있게 탄핵안이 통과됐다.

탄핵사유는 호세프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국영은행의 자금을 사용하고 되돌려주지 않는 등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2018년 12월31일까지인 호세프 대통령의 잔여 임기는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어받아 곧바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호세프는 탄핵안 가결 다음날인 9월1일 탄핵무효 소송을 제기했지만,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 10월20일 소를 기각했다.

브라질의 국가수반 탄핵은 1992년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전 대통령(현 상원의원)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30년 만에 직선으로 뽑힌 콜로르는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은행계좌를 동결하는 등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가 실패했다.

여기에 비리 의혹까지 더해지자 그해 12월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했고, 상원이 탄핵 절차를 개시하자 콜로르는 곧바로 사퇴했다.

상원은 그의 사퇴와 상관없이 탄핵안을 가결했지만, 대법원은 수년 뒤 콜로르를 탄핵으로 내몬 부패와 범죄 혐의와 관련한 구체적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다른 대표 사례는 인도네시아의 압두라만 와히드 전 대통령이다.

1999년 인도네시아 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로 대통령이 된 그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 일가를 상대로 부패 조사에 착수하는 등 개혁 조치로 국민적 지지를 받았지만 2년 만에 조달청의 공금횡령 사건 등 부패 스캔들로 의회가 만장일치로 탄핵을 가결했다.

그는 탄핵안 가결 후에도 스스로 대통령이라고 선언하면서 퇴진을 거부하다가 결국 미국행을 택했다.

에콰도르의 압달라 부카람 전 대통령도 1997년 취임 6개월 만에 탄핵됐다.

그는 공금횡령, 정실인사에 더해 콘서트와 앨범 제작 집착 등 '기행'을 일삼아 반정부 시위를 불러일으켰고, 의회는 결국 무능을 이유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리투아니아의 롤란다스 팍사스 대통령은 2004년 4월 대선 기간 재정후원자였던 러시아 기업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헌법위반 혐의로 탄핵당했다.

◇닉슨·에스트라다, 탄핵 가결 직전 사임해 '최악 불명예'는 피해

위의 사례들처럼 의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강제로 쫓겨난 경우도 있지만, 탄핵 표결을 앞두고 자진사퇴하는 방식으로 최악의 불명예를 피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 대표 사례가 바로 20세기 미국 최악의 정치스캔들로 불리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다.

1972년 재임 당시 민주당 전국본부 사무실을 일군의 공작반이 도청한 워터게이트 사건이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폭로되자 닉슨 행정부는 처음에 이를 '3류 절도사건' 취급을 하면서 워터게이트는 알지도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닉슨이 측근들과 사건 은폐를 모의하고 도청꾼들의에게 위증 교사를 시도한데다 중앙정보국(CIA)을 동원해 수사를 방해하려 한 사실이 알려지자 하원 법사위원회는 1974년 7월 탄핵 결의를 가결했다.

닉슨은 결국 의회의 탄핵안 가결 전에 자진 사퇴했다.

임기 도중에 대통령이 사임한 것은 미국 역사상 닉슨이 유일하다.

배우 출신인 필리핀의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1998년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로 당선됐지만, 재임 기간에 축재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2000년 7월 상원이 탄핵 재판에 착수하자 이듬해 1월 스스로 사임했다.

일본이민자 출신으로 페루 대통령에 오른 알베르토 후지모리 역시 2000년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 절차가 시작되자 일본 방문 도중 팩스로 사임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페루 의회는 그에게 사실상 탄핵에 해당하는 파면조치를 내렸다.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1995년 상원이 독직 사건에 연루된 자신을 재판에 회부하기로 하고 대통령 직무수행을 정지시키자 자진 사임했다.

◇노무현 탄핵 헌재서 기각…'성추문' 빌 클린턴 탄핵안 상원서 겨우 부결
의회가 발의한 탄핵안이 최종단계에서 부결된 사례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노 대통령의 총선 관련 발언을 두고 '공무원의 선거중립 위반' 결정을 내리자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주도로 2014년 5월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두 달여 심리 끝에 대통령을 파면시킬 만한 중대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고 대통령은 직무에 복귀했다.

한나라당은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탄핵 역풍'을 맞아 완패했다.

가장 최근 탄핵 부결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다.

주마가 사저 개보수에 국고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어 논란이 일자 남아공 의회는 지난 4월 탄핵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됐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탄핵 가결 직전 가까스로 자리를 지킨 케이스다.

백악관 여성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그는 위증과 사법방해 등의 혐의로 1998년 탄핵 소추됐으나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돼 최악의 불명예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앤드루 존슨 전 미국 대통령도 1868년 남북전쟁 직후 남북화해 정책을 거부한 국방부 장관을 해임한 것이 발단돼 공화당이 탄핵안을 발의했다.

하원에서 가결된 탄핵안은 상원으로 넘어간 뒤 정족수에서 단 한 표가 모자라 자동폐기됐다.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하원에서는 1999년 5월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체첸 전쟁, 국방력 약화, 소련연방 해체 등 5가지 책임을 물어 탄핵안 표결이 실시됐지만 부결됐다.

파라과이에서는 2003년 루이스 곤살레스 마치 전 대통령이 독직 혐의로 탄핵 소추됐지만, 역시 상원 표결에서 부결돼 위기를 넘겼다.

2000년 대만에서는 야당이던 국민당이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 결정에 반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을 상대로 탄핵안을 입법부에 제출했으나, 총통의 사과로 표결이 실시되지는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