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GO] 홍대에 100년 맛집이 나올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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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GO] 홍대에 100년 맛집이 나올 수 없는 이유
[래빗GO] 홍대에 100년 맛집이 나올 수 없는 이유
[래빗GO] 홍대에 100년 맛집이 나올 수 없는 이유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주택가. 10평 남짓 지하실에는 3년째 음악을 만드는 김윤식(가명) 씨가 살고 있습니다. 윤식 씨는 올해를 끝으로 정든 연남동을 떠납니다. 3년 전, 45만원 하던 월세가 내년부터 8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떠나는 이유가 임대료만은 아닙니다. 밥 먹으며 담소를 나누던 정든 식당은 문을 닫고, 작곡이 안 될 때마다 위로가 되어주던 단골 술집이 사라졌습니다. 조용한 골목길엔 우후죽순 카페들이 생겼고, 산책하기 좋던 공원은 ‘연트럴파크(연남동과 센트럴파크를 합친 명칭)’로 유명세를 탔고 밤마다 술판입니다.

연남동은 더 이상 조용하고 아늑한 창작인을 위한 동네가 아닙니다. 윤식 씨처럼 '핫플레이스(인기 지역)'로 부상하는 동네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가파른 임대료 상승과 뒤바뀌는 분위기 탓에 이주를 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한 단면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팽창하는 번화가 인근의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특색 있는 상점들이 하나 둘 생기며 시작됩니다. 후에 입소문을 타고 사람과 돈이 몰리고, 대형 프랜차이즈와 같은 거대 자본들이 들어옵니다. 결국 주거지는 상업지구로 돌변하기 시작합니다. 세입자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쫓겨납니다. 이미 2000년대 서울 이태원, 홍익대 인근, 경리단길, 신사동 등에서 시작된 젠트리피케이션은 해방촌, 연남동, 상수동, 망원동, 가로수길, 샤로수길(서울대입구 역 근처) 등으로 빠르게 번졌습니다.

범 홍대 상권으로 빠르게 편입 중인 연남동은 최근 몇 년간 SNS, 블로그, 방송 등에서 주목받으며 가파른 임대료 상승을 기록 중입니다. 4년간 연남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했던 강지석(가명) 씨. 그 역시 지난달 갑작스레 높아진 임대료에 편의점 운영을 관뒀습니다.

“2013년 처음 편의점을 시작할 때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200만원이었어요. 매년 30만원 정도로 올랐고요. 올해 월 290만원도 부담스럽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달 건물주가 월 400만원으로 올린다니깐 바로 나와버렸죠.”

지석 씨가 나간 그 자리엔 아직도 편의점이 있습니다.

“편의점 본사는 뜨는 동네에 매장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게 좋아요. 높은 임대료라도 받아주는 거죠. 이미 홍대처럼 대기업만 들어오는 구조예요. 소상공인들이 감당할 월세가 아니니까요.”

가파른 임대료 상승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입니다.

“여기(편의점을 운영했던 자리)는 사실 연남동 메인 상권도 아니에요. 주택가란 말이에요. 심지어 아파트 단지가 가로막고 있어 연트럴파크와도 관련이 없어요. 바로 앞에 편의점들 놔두고 공원 손님이 여기 오지는 않잖아요. 건물주 말로는 편의점 옆에 중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화장품 가게가 생겨서 임대료를 올린다는데 말이 되나 모르겠어요."

주변 가게들도 비슷한 상황이라 전했습니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같이 뛰는 거죠. 일단 이곳 건물주가 이렇게 올려버렸잖아요. 그럼 여기 도로변 라인 전체가 같이 오르는 거예요. 바로 옆 건물도 지금 임대료 월 200만원에서 내년부터 월 350만원으로 올랐어요. 일단 올리고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거죠."
[래빗GO] 홍대에 100년 맛집이 나올 수 없는 이유
윤식 씨와 지석 씨처럼 젠트리피케이션에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홍대 젠트리피케이션을 이미 겪은 상수동에서 이승희(가명) 씨를 만났습니다. 승희 씨는 상수동 상권이 생기기 전인 2010년 초 카페를 차린 개척자 중 한 명입니다.

“이 동네 장사도 벌써 6년째네요. 물론 지금은 많이 떠났지만 처음 자리 잡은 분들과 노력해서 상권의 발판을 마련했죠. 홍대 인근이지만 큰 길을 건너 꽤나 걸어야 하고, 다른 지역과 접근성도 좋지 않아 많이 찾는 동네는 아니었어요. 상수동이 어디냐고 되묻는 경우도 많았죠.”

범 홍대 상권에 포함된 지 오래인 상수동 임대료는 여전히 상승 중입니다,.

“6년 전 임대료가 70만원이었어요. 지금은 딱 두 배 오른 140만원. 워낙 가게가 작아서 이 정도면 보통인 수준이에요. 큰 가게는 초기 100만원에서 650만원까지 올랐어요. 작은 슈퍼, 정육점 같은 가게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카페도 많이 사라지고. 이윤 많이 남는 술집이 넘쳐나고 있죠.”

아니나 다를까, 카페 옆 리모델링 중인 새 가게도 술집입니다.

“저기도 처음엔 카페였어요. 처음 들어올 때 월세가 80만원이었는데 1년 뒤 100만원으로 올랐죠. 임대료는 오르고 장사는 잘 안돼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요. 새로운 세입자분은 술집이라는 이유로 50만원 더 올린 월세 150만원에 계약했다더군요. 저희 가게는 그나마 오랫동안 함께한 단골들이 많아 버티고 있는 거죠.”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주인이라도 계약 기간 중 마음대로 세입자를 내쫓을 수 없습니다. 동일 계약자라면 5년 간 최고 9%까지만 임대료를 올릴 수 있습니다. 1년 만에 80만원에서 20만원 오른 100만원 역시 9% 상한선을 넘습니다. 더군다나 100만원이던 월세는 하루아침에 50%나 뛰었습니다. 세입자가 바꼈으니 주인이 불법을 저지른 건 아닙니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월세를 많이 올려받을 목적으로 술집 세입자만 소개받는 건물주도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카페와 공방, 옷가게, 밥집 등이 옹기종기 다양성을 뽑내던 이 일대가 대부분 술집으로 획일화한 주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가게 주인은 이렇게 귀뜸했습니다.

“건물주들도 주변 눈치를 봐요. 또 부동산에서 건물주를 들쑤시거든요. 지금 100만원 받는 월세 200만원 받게 해준다고 말이죠. 돈 앞에 장사 없는데 어떡하겠어요. 요즘처럼 초저금리 시대에 월세 받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다만 제도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생할 뚜렷한 방안이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서울시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갔는데 이미 사람들은 떠나고 있으니 아쉽죠.”

상수동에서 만난 다른 세입자도 법은 여전히 멀리 있다는 말합니다. 권리금 문제도 있습니다.

“장사를 하면 권리금이 정말 중요해요. 나가더라도 권리금을 챙겨야 되는데 다음 세입자를 구할 때 건물주가 방해할까 봐 눈치를 보는 거죠. 권리금을 보장하는 법이 있지만, 법적인 해결에도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잖아요. 특히 저처럼 보호기간이 넘은 경우 억울해도 나갈 때 받을 권리금 생각해서 참는 거죠.”

권리금은 통상 세입자가 새로운 임차인을 집주인에게 소개한 뒤 회수하는 비용입니다. 눈에 보이는 시설 비용뿐 아니라 가게 인지도나 단골 수, 이미지 등 금전으로 환산하기 힘든 무형의 가치까지 포함한 보상금 성격입니다.

서울과 전국 6개 광역시 평균 권리금은 4575만원. 서울이 평균 5400만원으로 제일 비쌉니다. 지난해 5월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에 권리금 조항이 신설되면서 권리금을 제대로 못 건지고 쫓겨날 경우 집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권리금 거래를 정식 신고하는 경우는 10건 중 1건으로 드물어 법적 근거를 찾기 힘듭니다. 뿐만 아니라 집주인 역시 같은 피해자 입장으로 돌변하기 일쑤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희망을 말하는 한 가게 주인도 만났습니다.

“처음부터 목이 좋아서 장사가 잘 된 게 아니에요. 번잡스러운 거 싫어하고, 많은 돈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찾아온 거죠. 화려하지는 않지만 본질에 충실한 가게들이 그분들을 맞이했고요. 제 바람은 예전처럼 좋은 이웃들과 사이좋게 오래 장사하는 게 다예요."
[래빗GO] 홍대에 100년 맛집이 나올 수 없는 이유
지난 8월 서울시가 발표한 ‘젠트리피케이션 데이터 분석 결과 보고’에 따르면 앞선 사례를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 지역 음식점 수는 2012부터 2015년까지 연남동 195%, 상수동 102%나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증가율 47%을 훨씬 웃돕니다.

건물을 사들인 외지인 비율도 높습니다. 연남동은 2001년 38%에서 2015년 60%로 증가했습니다. 상수동은 2006년 49%에서 2015년 66%로 증가했습니다. 건물 다 근저당금액 역시 2013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연남동은 2억 9200만 원에서 2015년 4억 2500만 원, 상수동은 4억6500만원에서 2015년 7억2300원으로 증가했습니다. 건물주 빚과 함께 임대료, 동네 물가 상승도 함께 올랐습니다.

뉴스래빗이 연남동 상수동 일대를 취재한 날. 공교롭게도 서울시 공무원 몇몇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를 알리는 전단을 인근 가게에 일일이 배포했습니다. '서울형 장기안심상가 조성', '상가건물매입비 지원', 관련 법률 상담 등 젠트리케이션 방지 대책에 대한 홍보 차원에 열심이었습니다.

이를 본 한 가게 주인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장인정신이 없다고 하는데, 솔직히 사람 문제가 아니에요. 내 가게는 없는데 임대료는 1년이 멀다하고 오르고, 깜짝 잘 되는 업종이라 하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경쟁 통에 10년이든 100년이든 오래하고 싶어도 못해요. 경기는 안좋아져서 자영업자는 늘어나고, 덩달아 경쟁은 심해지고, 그러다보니 장사는 더 안되죠. 일본의 100년 넘은 오랜 국수집 라면집 같은 곳이 이 홍대 '핫플레이스'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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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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