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공로연수제, 연 1500억 혈세 낭비 '논란'
정년퇴직을 앞둔 공무원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도입한 ‘공무원 공로연수제’가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놀고 먹는’ 제도로 전락하면서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뒤늦게 실태 파악과 제도 개선에 나섰다.

행정자치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공로연수 공무원 현황 및 각 시·도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연수 교육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라는 내용의 긴급 공문을 보냈다”고 20일 밝혔다. 공로연수 중인 공무원이 퇴직하기 전 민간 기업에 취업하거나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등 부작용이 끊이지 않자 문제점을 파악한 뒤 제도 개선을 통해 공로연수제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공무원 공로연수는 정년퇴직을 6개월~1년 남겨둔 공무원에게 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1993년 도입됐다. 중앙정부의 각 부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이 제도를 폐지하고 있지만 지자체에서는 사실상 의무제도로 자리 잡았다.

각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공로연수 계획을 수립해 시행한다. 대상 공무원은 민간 연수기관이나 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의 교육훈련기관에서 합동연수를 받아야 한다. 공로연수 기간에는 특수업무수당과 초과근무수당 등을 제외하고 보수가 전액 지급된다. 영어나 컴퓨터 교육 등 민간 업체에서 받는 자체 교육 훈련비도 지자체가 전액 지원해 준다.

행자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공로연수를 받는 공무원은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통틀어 2500여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보수 및 교육훈련비는 연간 1500억원가량이다. 서울시 본청과 25개 구청이 매년 공로연수 공무원에게 지원하는 예산만 약 150억원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공무원들이 퇴직 연령에 접어들면서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공무원 숫자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일부 지방의회와 시민단체 등은 현행 공무원 공로연수제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어긋나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면 공로연수 기간 동안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은 사실상 없다는 게 지자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공로연수에 들어간 공무원 대부분이 교육을 받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다”며 “6급 이하 공무원들은 몰래 민간 기업에 재취업하는 일도 있다”고 털어놨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는 공무원은 공무 외 겸직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퇴직을 앞둔 공무원에게 예산을 들여 해외 여행을 보내는 관행이 여전하다. 지난해 시행된 전라북도에 대한 정부합동감사에서는 9개 시·군이 2012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20년 이상 근속 후 퇴직하는 공무원 전원에게 부부동반 해외 여행과 기념품 지급 등으로 18억원가량을 부당지출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공로연수제를 폐지하고 장기 휴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자부 고위 관계자는 “지자체의 공로연수 실태를 점검한 뒤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 공무원 공로연수제

정년퇴직을 6개월~1년 앞둔 공무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행하는 교육 연수제도. 연수 기간 중 현업 수당을 제외하고 보수를 전액 지급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