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유 주식에 대한 위험 부담금(요구자본)을 대폭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보험사 재무 건전성 감독체계 강화를 서두르는 것은 2020년부터 도입될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및 IFRS9)에 부합하는 감독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들 회계 및 감독 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형 보험사들이 도산 위기를 겪으면서 미래의 보험 가입자들에게 돌려줄 장기 부채(보험금)를 보다 더 엄격히 관리하는 데 초첨을 맞추고 있다”(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설명이다. 하지만 보험사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특히 삼성생명의 계열사 보유 주식이 많은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해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자산 운용 비상 걸린 보험사] 솔벤시Ⅱ '자본 확충 폭탄'…보험사 "저금리에 대체투자도 못할 판"
당국 “업계 의견 수렴한다”지만…

금융당국이 도입할 새로운 감독 기준은 유럽연합(EU)이 올해부터 보험사에 적용하고 있는 ‘솔벤시Ⅱ(Solvency Ⅱ)’를 상당 부문 벤치마킹한 것이다. 솔벤시Ⅱ는 보험사가 보유 자산을 시가로 평가하고 재무적 위험 요인을 위험 수준에 따른 시나리오별 분석을 통해 자체 평가하도록 하는 체계다.

금융당국은 IFRS4 2단계를 도입하면서 지급여력비율(RBC) 제도를 부분적으로 손질하기보다는 아예 새로운 재무 건전성 감독 기준을 도입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보험업계가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보유 주식에 대한 요구자본이 크게 높아지는 대목이다. 올해부터 솔벤시Ⅱ를 시행하는 유럽계 보험사는 보유 주식에 대한 위험 부담금을 최고 40%(RBC 기준)까지 쌓아야 한다. 1조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4000억원이 요구자본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현재 8~12%인 국내 RBC 기준이 2020년부터 당장 유럽 수준으로 높아질 것 같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업계가 단기간에 자본을 확충하고 자산운용을 변화시켜야 하는 데 대한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요구자본 수준이 어느 정도 높아질지는 향후 솔벤시 규제 모델을 정밀하게 분석한 뒤 업계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제도 개편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업계에 미칠 충격을 완화한다고 해도 주식 종류에 따라 요구자본 수준이 지금보다 2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업계 “자산운용 어떡하라고…”

새로운 재무 건전성 감독 기준은 보험사의 자산운용 및 영업 행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뿐만 아니라 주식(에쿼티) 형태로 투자하는 부동산, 인프라, 사모펀드(PEF)와 같은 대체투자도 규제 대상이기 때문이다. ‘솔벤시Ⅱ’ 수준의 규제가 현실화되면 초저금리 환경에서 대체투자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 보험사의 자산운용 체계는 전면 개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 모 대형 보험사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주식에 대한 요구자본 반영 비율을 대폭 올리는 것은 사실상 주식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대체투자 확대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경우 보험사의 운용 수익률 하락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14조원을 포함해 약 20조원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이 추가로 쌓아야 할 요구자본만 약 6조~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자본을 충분히 확충하지 못하면 보유 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는 대형사를 중심으로 보험산업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솔벤시Ⅱ 도입 시기를 늦춰줄 것을 감독당국에 요청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중소형 보험사들은 1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솔벤시Ⅱ를 도입한다”며 “유럽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솔벤시 II

보험회사 가 예상하지 못한 손실이 발생해도 보험금 지급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준비금을 쌓게 하는 자기자본 규제제도. 자산·부채의 시가평가를 통해 잠재적 리스크에 따른 지급여력 변동을 시나리오별로 즉각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주식의 경우 최대 40%의 준비금을 쌓도록 하는 등 리스크 유형에 따라 차별적인 자본량을 부과한다.

이지훈/좌동욱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