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공식 수주전 2년 전부터 사전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 반포주공1단지. 설지연 기자
건설사들이 공식 수주전 2년 전부터 사전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 반포주공1단지. 설지연 기자
서울 잠원동 한신4지구 재건축조합은 최근 대형 건설사들에 ‘사전 홍보활동’을 즉각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 지구는 이르면 연말께 재건축 공사할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아직 시공사 선정 공고를 하려면 6개월 이상 남았지만 올초부터 4~5곳의 대형 건설사 직원들이 휴지 과일 등 선물을 들고 조합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전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전익희 한신4지구 재건축조합 상근이사는 “이름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가 불법으로 건설사에 노출된 것을 지적하는 조합원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불법 사전 홍보활동을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시공사들이 휴지 같은 것을 들고 계속 찾아온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의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을 앞두고 건설사들이 불법 사전 홍보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조합 집행부와 인근 중개업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선물 공세를 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불법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가지고 일일이 조합원을 찾아다니며 사전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40조원대 도시정비 수주전 앞두고 '불법 사전홍보' 판친다
◆사상 최대 규모 수주전 눈앞

1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올해부터 2022년까지 7년간 40조원 규모의 재건축·재개발 공사 발주 물량이 나온다. 연평균 5조7000억원 규모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의 발주 물량이다. 작년까진 연간 2조원 안팎의 시공사 선정이 이뤄졌다. 서울 집값을 선도하는 강남권에서도 24조원 규모의 발주가 예정돼 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2013년 이후 서울 집값이 급반등하면서 재건축·재개발 수익성이 커지자 속도를 높이는 재건축·재개발 구역이 늘고 있다”며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사들이 재건축·재개발 수주에 목을 매고 있어 유례없이 뜨거운 재개발·재건축 수주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켜지지 않는 개인정보 보호

서울 반포동 반포주공 1·2·4주구는 아직 시공사 선정을 하려면 6개월 이상 남았지만 작년 초부터 건설사들이 단지 내·외부에서 사전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건설사들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주민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 휴지 등 선물을 건네고 있다. 지난달 30일 조합이 개최한 주민설명회 때는 주요 건설사 아웃소싱 요원들이 입구에 도열해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중개업소 사장들에게도 수시로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점심시간에 방문해 함께 식사하자고 한다”며 “중개업소들은 정보도 얻을 겸 같이 밥을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해진 기간에만 홍보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공공관리제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시공사 선정 시점이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선 한술 더 뜬다. 한신4지구에선 대형 건설사 용역업체 직원들이 단지 곳곳을 누비고 있다. 공공관리제 하에서 조합원을 개별 접촉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회사별로 20~30명의 용역업체 직원이 조합원을 직접 접촉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으로 확보한 조합원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담당 동(棟)을 나눠 조합원을 공략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잘 봐달라며 전화를 하더니 느닷없이 집에까지 직접 찾아와 황당했다”며 “조합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항의했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로 조합 협력업체를 통해 조합원 개인 정보를 확보한다”며 “불법인줄 알지만 당국이 제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별 문제 의식 없이 개인정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단지 주변 중개업소도 시공사들의 공략 대상이다. 우호 여론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까닭이다. 잠원동 B공인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음료수를 너무 많이 가져다 줘 따로 손님 응대용 음료수를 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공식 수주전이 벌어지면 작년 같은 금품·향응 제공 행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작년 강남권에서 시공사를 선정한 단지에선 명품백 제공, 호텔 식사 대접, 모델하우스 탐방, 상품권 제공, 서면결의서 매수 등 불법행위가 만연했지만 경찰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아무런 민형사상 처벌을 하지 않았다”며 “건설사들의 사전 마케팅 비용은 결국 조합원 분담금 증가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조성근/설지연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