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상공에 떠 있는 열기구. 사진=스웨덴관광청 제공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상공에 떠 있는 열기구. 사진=스웨덴관광청 제공
스웨덴은 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나라다. 국토의 53%가 숲, 9%가 호수와 강으로 이뤄져 있다. 수도 스톡홀름(Stockholm)도 예외는 아니다. 스톡홀름을 여행하다 보면 도시를 품은 아름다운 자연을 어디서나 만나게 된다. 2010년 제1회 유럽환경수도(Europe green capital)로 지정된 스톡홀름은 14개의 섬으로 이뤄진 물의 도시다. 도시 곳곳에 1000개가 넘는 공원이 자리 잡은 덕분에 시민의 95%가 녹지에서 300m 이내에 거주한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울창한 자작나무 숲이 있고, 운하를 따라 갈대밭이 펼쳐져 있으며, 곳곳에 요트 선착장이 있다. 자연과 인간과 역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 스톡홀름은 북유럽의 매력을 오롯이 품은 보석 같은 도시다.

강이 에워싼 ‘물의 도시’ 스톡홀름
스톡홀름 중심부에 자리잡은 유르고드스브론. 사진=스웨덴관광청 제공
스톡홀름 중심부에 자리잡은 유르고드스브론. 사진=스웨덴관광청 제공
스톡홀름은 ‘북구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어디나 강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어서다. 도시를 구성하는 14개의 섬을 57개의 다리가 연결한다. 물의 도시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날 수면 위에서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다. 탁 트인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스톡홀름은 다른 도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한다. 스톡홀름의 여러 카약 대여 업체는 1인용 또는 2인용 카약을 2~4시간 정도 빌려 준다. 카약을 타고 도시를 둘러볼 수 있다는 말에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혹시 옷이 물에 젖을까봐 카약을 타기 전 대여소에서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수영복을 입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의는 거의 젖지 않기 때문에 하의만 여분으로 챙겨 가면 충분하다.

만개한 벚나무 아래서 통화를 하는 스톡홀름 여성
만개한 벚나무 아래서 통화를 하는 스톡홀름 여성
스톡홀름은 중세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감라스탄(Gamla Stan),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외스테르말름(stermalm), 예술가들의 아지트인 쇠데르말름(Sdermalm) 등의 지역으로 구성된 세련되고 우아한 도시다. 카약을 타고 감라스탄의 서쪽에 있는 롱홀멘(Lngholmen)을 한 바퀴 돌았다. 여름이면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일광욕과 바비큐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섬이다. 물 위를 떠다니는 동안 눈에는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와 도시의 풍경이 보였고, 귀로는 청춘들이 틀어놓은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으로 햇살과 바람을 즐기며 다니다 보니 어느새 복잡한 생각들이 가라앉았다.

중세의 매력이 살아 있는 감라스탄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중세 도시인 감라스탄은 스톡홀름의 관광명소가 밀집한 작은 섬이다. 면적은 넓지 않으나 지역이 갖는 의미는 깊다. 스톡홀름의 역사가 1252년부터 감라스탄에서 시작됐다. 이곳이 지금까지 스톡홀름의 심장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마녀 배달부 키키’에도 감라스탄이 등장한다. 주인공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았던 장소가 바로 감라스탄이다. 감라스탄의 거리와 건물들은 꼬마 마녀 키키가 살고 있을 법한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스토르토리에트 광장
스토르토리에트 광장
섬의 북쪽에는 600개 이상의 방을 갖춘 대규모 왕궁과 스톡홀름 대성당이 있으며, 중심부에는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인 스토르토리에트(Stortorget)가 있다. 스토르토리에트에서는 스웨덴의 여러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16세기에 벌어진 ‘스톡홀름 피바다(Stockholm bloodbath)’ 사건이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북유럽의 패권을 두고 천년 이상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16세기에는 스웨덴이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고, 스웨덴 사람들은 끊임없이 덴마크에 대항했다. 1520년 11월 덴마크는 스웨덴의 독립운동을 제압하기 위해 스토르토리에트에서 82명의 스웨덴 귀족과 일반 시민을 처형하는 ‘스톡홀름 피바다’ 사건을 벌였다. 그럼에도 스웨덴은 계속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마침내 1523년 독립을 쟁취했다.

19세기 초까지 전쟁을 벌인 두 나라는 지금도 서로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 주변의 스웨덴 친구들은 덴마크 사람들을 게으르고 술만 많이 마시는 국민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또한 덴마크와 축구 경기를 하는 날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응원한다. 마찬가지로 덴마크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들을 지루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놀려댄다. 그래도 스웨덴과 덴마크는 증오보다 애정에 기반을 둔 경쟁 관계에 더 가까운 편이다. 끔찍한 사건의 배경지인 스토르토리에트는 여름엔 노천카페가, 겨울엔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서는 아름다운 광장으로 변모했다.

감라스탄 곳곳에는 보행자 전용 도로가 있으며, 예스러운 중세 시대 건물들 사이사이로 조용히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샛길이 뻗어 있다. 길을 따라 걷다가 고개를 들면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이 보이고, 길 끝에 이르면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펼쳐진다. 거리에 늘어선 크고 작은 갤러리, 앤티크 매장, 카페들은 세련되고 무척 깔끔하다.

로센달 정원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호수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시민들
호수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시민들
스웨덴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는 피카(Fika)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문화를 말한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친구를 만날 때도, 데이트할 때도 피카는 매우 중요하다. 스웨덴 사람들은 하루 평균 4잔의 커피를 마신다. 진한 스웨덴식 커피에 달콤한 시나몬롤이나 크림을 듬뿍 얹은 파이를 곁들여야 제대로 된 피카라고 할 수 있다.

스톡홀름에는 피카를 즐길 만한 카페가 많다. 하지만 그중 딱 한 곳만 고르라면 단연 로센달 정원(Rosendals Trdgrd)이다. 로센달 정원은 스웨덴 가이드북 ‘화이트 가이드(White Guide)’가 선정한 스웨덴 최고의 카페다. 시립공원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로열 내셔널 시티 파크(Royal National City Park)에 속한 유르고르덴(Djurgrden) 섬에 있다.

과거 왕실의 정원이던 로센달 정원은 이제 스톡홀름 시민들의 대표적인 소풍 장소로 바뀌었다. 내부에는 100여 품종이 넘는 장미가 있는 장미정원을 비롯해 과수원, 유기농 식품을 파는 식료품점, 수공예 그릇 판매점, 카페, 빵집, 꽃집 등이 있다. 스톡홀름 시민들처럼 피카와 여가를 누리고 싶다면 로센달 정원 내 카페에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맛본 뒤 바로 옆 과수원으로 이동해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면 된다.

사라진 과거가 재현된 스칸센

스웨덴의 모든 것을 짧은 시간에 경험하고 싶다면 스칸센(Skansen)만한 곳이 없다. 스칸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박물관으로 스웨덴 민속학자인 아르투르 하셀리우스가 1891년 설립했다. 그는 점차 사라져 가는 스웨덴의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전국에서 150여채의 전통 가옥을 수집했고, 스칸센에 16~20세기 스웨덴의 모습을 재현했다.

스칸센의 빵집에서는 전통 의상을 입은 직원들이 옛날 방식으로 직접 구운 빵을 팔고, 유리공방에서는 장인들이 사람들 앞에서 유리공예 작업을 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발푸르기스(Walpurgis)의 밤’, 하지에 열리는 스웨덴 최대 축제인 ‘미드서머(Midsummer)’, 12월13일에 열리는 ‘성 루시아의 날(Lucia)’ 등 스웨덴의 대표적인 행사 및 축제도 즐길 수 있다. 여름에는 콘서트가 자주 열린다.

대자연이 살아 있는 스웨덴에서도 스칸센은 곰, 순록 등의 각종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동물은 유럽과 아시아의 최북단에서만 사는 말코손바닥사슴이다. 말코손바닥사슴은 유럽에서는 엘크(Elk), 북아메리카에서는 무스(Moose)로 불리는 동물로, 사슴과에 속하지만 말보다 몸집이 크고 다리가 꽤나 길다. 쉽게 보기 어려운 동물을 스톡홀름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소중한 선물과 같이 느껴진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묘지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
스웨덴에 살면서 자주 들른 곳은 공동묘지다. 특별히 묘지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스웨덴의 공동묘지가 워낙 개방적인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묘지는 산 사람과 망자 모두를 위한 공간이다. 묘지를 바라보는 이런 시각은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Skogskyrkogrden)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스톡홀름 시는 묘지가 아니라 자연 경관이 중심이 된 새로운 형태의 공동묘지를 만들고자 공모를 했고, 스웨덴 건축가 아스플룬트와 레베렌츠의 디자인이 채택됐다. 이 두 젊은 건축가는 스톡홀름 남부에 망자를 위한 공원이 아니라 자연과 건축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기존 지형을 활용한 묘지공원은 현대건축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손꼽히며, 이후 다른 나라의 묘지 설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코그쉬르코고르덴은 1994년 유네스코로부터 건축학적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곳을 방문하면 드넓은 잔디밭과 둥그런 능선, 적막한 숲에 절로 숙연해진다. 숲 사이사이에 묘지들이 있고, 묘지에는 그들의 가족 또는 친구들이 두고 간 꽃들이 놓여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떠나간 이들을 위해 정성스레 불 밝힌 초를 묘지 앞에 두고 떠난다. 적막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를 지닌 스코그쉬르코고르덴에 방문하면 삶과 죽음이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고지연 작가·스웨덴 라이프 저자 jiyon.ko@gmail.com

여행팁 - 여름에 백야 현상…새벽에도 햇살 받으며 여행

[여행의 향기] 14개의 섬·1000개의 공원…'북유럽의 베네치아'를 만나다
스웨덴은 여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스톡홀름은 6~8월의 한여름 날씨가 한국의 5월과 비슷하다. 여름의 최고 기온은 보통 20~25도 정도지만 일교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밤에는 5도까지 내려갈 수 있다. 스웨덴을 여름에 방문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백야 현상이다. 해가 가장 긴 6월에는 자정에도 하늘에 빛이 어슴푸레 남아 있다. 잠시 사라졌던 해가 다시 떠오르는 시각은 새벽 2시. 주말에는 대중교통이 24시간 운행하기 때문에 새벽에 밝은 햇살을 받으며 여행할 수 있는 점도 독특하다.

스웨덴은 유럽연합에 속해 있으나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크로나(SEK)를 사용한다. 어디서나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기 때문에 현금을 적게 가져가도 여행에 큰 불편함이 없다. 공식 언어는 스웨덴어지만 영어가 잘 통하기 때문에 여행에 별 무리가 없다.

물가는 비싼 편이다. 특히 레스토랑이 비싸다. 하지만 많은 레스토랑에서 평일 점심에 ‘오늘의 메뉴’를 100크로나(약 1만4000원) 정도에 팔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싸게 즐길 수 있다. 박물관 또는 미술관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도 훌륭한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있으니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