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올해 첫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은 줄리 잉크스터(56·미국), 안니카 소렌스탐(46·스웨덴), 카리 웹(42·호주) 등 ‘전설의 메이저 퀸’을 다수 배출한 ‘LPGA판 마스터스’다. 1988년 챔프 에이미 올컷(미국)이 우승을 자축하기 위해 18번홀 옆 연못에 몸을 던지면서 시작된 ‘입수 세리머니’는 대회의 상징이 됐다. 박지은(37) 유선영(29·JDX멀티스포츠)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이 감격을 누린 28인의 챔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LPGA 25승의 박세리(37·하나금융그룹)에겐 그 ‘퍼즐’이 없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생애 통산 4대 메이저 우승)도 여전히 ‘미완의 꿈’이다. 31일(현지시간) 개막하는 이 대회에서 K골프의 네 번째 ‘호수의 여왕’이 탄생할 수 있을까.
K골프 세 번째 '호수 여왕' 나올까
◆전인지 ‘한풀이 우승’ 정조준

출전 선수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이는 전인지(22·하이트진로)다. 이달 초 뜻밖의 허리 부상으로 대회 3개를 건너뛰고 한 달여 만에 투어에 복귀한다. 대회장인 미국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에서 지난주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부상 초기엔 동계훈련 때 바꾼 스윙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80% 가까이 회복됐다. 대회장은 지난해 초청선수로 출전해본 만큼 낯설지 않다. 그는 당시 1오버파를 쳐 장하나(24·비씨카드)와 함께 공동 41위를 했다. 이 경험이 약이 됐다. 두 달 뒤 초청선수로 US여자오픈을 제패하는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올해 2개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혼다LPGA타일랜드)과 3위(코츠골프챔피언십)에 오르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첫 승은 아깝게 놓쳤지만 ‘파온 시 홀당 평균 퍼팅 수(GIR)’ 1위(1.69)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GIR은 정상적으로 공을 그린에 올렸을 때 몇 번의 퍼팅으로 홀인하느냐를 분석한 통계다. 퍼팅만큼은 우승권에 들었다는 얘기다. 한 달간의 실전 공백을 극복하고 올초 대회에서 보여준 ‘절정의 퍼팅감’을 복원해내느냐가 관건이다.

지난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상금왕 이보미(28·혼마골프)도 출전해 우승을 다툰다. 목표는 오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이다. K골프 ‘빅4’에 진입하려면 최소 10위권 안에 들어야 한다. 현재 그의 세계랭킹은 15위다. 이보미는 “7월 전까지 국내외 투어에서 3승을 올려 세계랭킹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지난주 KIA클래식에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 박인비도 두 번째 입수 세리머니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호수의 여왕은 나!”

한국 선수들의 경계 대상 1호는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19)다. 대회 자체를 즐기는 듯한 특유의 ‘무심(無心) 멘탈’이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 대회에서 리디아 고와의 재대결을 벼르는 박성현(23·넵스)은 “우승하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강자”라고 평했다. 지난해 에비앙챔피언십을 사상 최연소(18세4개월20일)로 제패한 리디아 고가 우승하면 메이저 2연승이자 2주 연속 우승으로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다.

디펜딩 챔피언 브리타니 린시컴(미국)도 ‘K골프’에 맞설 강력한 대항마다. 린시컴은 특히 이 대회에 강하다. 친구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를 연장전에서 꺾고 챔프에 오른 지난해에 앞서 2009년에도 이 대회 우승컵을 거머쥔 메이저 강자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마지막으로 도전하려던 박세리는 ‘최근 10개 대회 이상 출전한 명예의 전당 헌액자’라는 요건을 채우지 못해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