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공천 결과에 '조선족 국회의원' 꿈꿨던 중국동포 낙담
"믿을 만한 리더 부족…내부부터 돌아봐야" 자성론도 고개


제20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에서 다문화를 대변하는 인물이 제외된 것을 두고,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가운데서도 '최초의 조선족 국회의원'을 기대했던 중국동포들은 "정치권이 70만 조선족을 소외시켰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앞서 각 당은 비례대표 후보 공모에 앞서 여성과 다문화가정 등 소수계층을 배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3일까지 공개된 여야의 후보 명단에서 다문화 관련 인물은 재한조선족 여성단체인 CK여성위원회 박옥선 회장이 유일하다.

박 회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됐지만, 순위가 30번대에 머물러 당선권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많은 지원자가 몰린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공모에서는 방송인 로버트 할리(하일) 씨를 비롯해 옥기순 재한중국동포유권자연맹 고문, 표영태 재한동포국적자총연합회 이사장 등 다문화 분야에 출사표를 던진 신청자 모두 탈락의 쓴맛을 봤다.

비례대표 공천 결과를 바라보는 중국동포의 실망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김성학 중국동포연합중앙회장은 "국회가 동포사회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중국동포들이 한국 사회와 한중 관계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단 한 명도 당선권에 들지 못했다는 게 굉장히 유감스럽다"고 토로했다.

동포사회는 지난달 초 새누리당이 조선족 후보를 영입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중국동포를 대표하는 인물이 나올 때가 됐다'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김무성 대표가 곧이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일부 인사들은 국회의 동향을 살피며 동분서주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김 회장은 "많은 동포가 국회 진출을 꿈꾸다가 그 과정에서 분열과 갈등이 나타나 동포사회가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며 조선족 사회의 결속력 부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다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아직 '제2의 이자스민'을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여당은 이자스민 의원을 다문화 비례대표로 전격 발탁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임기 내내 반(反)다문화 세력의 타깃이 됐다.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대표성에 관한 의견도 분분했다.

최근 커지는 이주민 혐오 정서 역시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이주민 단체 관계자는 "지난 19대 총선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잇단 강력사건, 경제난, 유럽 테러 등으로 이주민이나 조선족을 보는 시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이 무리해서 공천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네팔 출신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민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는 사회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며 "이주민 의원들이 꾸준히 국회에 진출해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도 아직은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다문화가 정치적 논의의 장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다문화센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주민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저출산과 고령화로 사회 활력이 떨어지고 복지 위주의 정책으로 반다문화 정서가 커지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한국다문화센터의 공동대표이자 다문화 어린이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이현정 단장 역시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후보에 신청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국내 이주민 사회의 성숙 단계를 들어 '제2의 이자스민' 혹은 '최초의 조선족 국회의원'을 기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한국인으로서 중국동포 사회를 연구해온 곽재석 한국이주·동포개발연구원장은 "중국동포 사회의 여건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고, 한국 사회 내에서 역할을 고민하는 리더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며 "한국사회 정착이 좀 더 안정화하고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지자체 의원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희숙 한국이주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은 "비례대표 공천 결과에 분개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며 "아직 한국 다문화의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이제 시작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사회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okk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