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용역보고서 "젊은지도자 우상화에 소년 먼저 공략…유치원생도 주역으로"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에서 제작된 영화와 TV 드라마 5편 중 한 편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이는 젊은 지도자를 우상화하기 위한 장치라는 정부 용역 보고서가 나왔다.

17일 통일부 의뢰로 인제대 통일학부 안지영 교수가 작성한 '김정은 시기 개별화된 아동·청소년 형상'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일 시기 북한에서는 모두 357편의 영화와 TV 드라마가 제작됐다.

이 가운데 아동이나 청소년이 주연이거나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5.92%(16편)에 불과했다.

반면,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2012년부터 2015년 9월 사이에 제작된 19편의 영화와 TV드라마는 무려 21.05%(4편)가 아동과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안 교수는 "유일지도 체제의 계승과 유지를 강조하기 위해 젊은 지도자가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세대로 소년들을 먼저 공략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충효를 강조하는 권위적 문화에서 수령이라고 하더라도 30대 초반이라는 연령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면서 "사상전과 김일성 리더십의 모방만으로는 김정은의 짧은 연륜과 부족한 카리스마를 대체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아버지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어린 세대를 통해 전 주민의 가치관 및 정체성 개조를 꾀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김정은 시기 제작된 영화와 TV 드라마들은 이전과 달리 5∼6세 유치원 아동도 주역으로 끌어올렸는데, 이것 역시 김 제1위원장의 젊은 나이와 짧은 연륜에 부합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안 교수는 지적했다.

그러나 주역으로 격상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아동과 청소년들은 오히려 단순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퇴화했다는 평가다.

안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어린이, 청소년을 주연으로 하는 작품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나, 얼마나 주체적으로 묘사되는가란 측면에선 오히려 비중이 축소됐고, 어느 정도 다면적이었던 인물묘사도 단순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전 시기 작품에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느낌과 생각, 자신의 욕구가 좌절됨으로써 돌출되는 행동과 대사가 나름 현실적으로 묘사됐다면, 2012년 이후 작품들은 주로 김정은 원수를 향한 '충성동이'로 그려지는데 초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북한 영화에 등장하는 아동·청소년은 어린 고아가 많았지만, 현재는 그러한 고단한 현실과 사회문제가 더 이상 주요 소재로 등장하지 않는 것도 차이다.

안 교수는 "작품속 어린이, 청소년들은 국가발전을 위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도록 계획된 분야(예술·과학·체육)에 한정돼서만 꿈을 꿀 수 있다"면서 "여기에 새 정권의 필요가 더해져 이들은 30대 초반인 지도자의 인품과 자격, 사회주의 정권의 우월성과 안정성을 증명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됐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