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유럽 은행] '제2 리먼사태' 거론되는 유럽 은행 부실…도이치은행 주가 '반토막'
도이치뱅크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유럽 은행의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부실채권 규모가 급증한 데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유럽 은행들이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지 모른다는 말도 나온다.

◆독일 최대 은행도 부실 우려

유럽 은행의 부실화 우려를 자극한 것은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뱅크다. 도이치뱅크가 조건부 후순위 전환사채(코코본드) 이자를 내년에 지급하지 못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면서 8일(현지시간) 하루 동안 이 은행 주가(독일 증시 기준)는 10% 가까이 급락했다. 9일에도 4% 넘게 떨어져 연초 대비 반토막이 났다. 9일 스위스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가 8%,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디트도 7% 떨어지는 등 유로존 은행 주가가 동반 약세를 보였다.

코코본드는 회사가 어려울 때(contingent) 채권에서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convertible) 조건부 자본증권이다. 여차하면 주식으로 바뀌거나 상환이 거부당할 위험이 있지만 금리가 높은 편이라 투자자들이 선호한다. 회사채면서도 자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금융위기 후 도입된 새 바젤Ⅲ 규제에 따라 자본건전성을 대폭 높여야 하는 은행이 주로 발행한다.

도이치뱅크가 코코본드 이자를 못 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은행은 67억유로(약 9조원) 순손실을 봤다. 존 크라이언 도이치뱅크 최고경영자(CEO)는 9일 유럽 증시 마감 후 기자회견을 열어 “은행 경영상태는 바위처럼 견고하며 올해 10억유로어치 이자 지급 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도이치뱅크가 수십억유로 규모의 채권을 되살(바이백) 계획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하면서 미국 뉴욕증시에선 낙폭을 줄였지만 불안감을 완전히 잠재우진 못했다.

◆유럽 은행 재무상태 ‘빨간 등’

이런 상황은 도이치뱅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은행들은 최근 부실채권 증가와 마이너스 금리 체제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유럽은행감독청(EBA)이 지난해 하반기 유럽연합(EU) 회원국과 노르웨이 등의 105개 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원금이나 이자가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 규모가 모두 1조유로(약 134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9년 대비 두 배 수준이다. 특히 이탈리아 금융권 대출의 약 17%는 부실채권으로 분류되고 있다. 경기가 둔화하면서 기업대출과 가계대출 모두 부실률이 높아졌다.

ECB의 마이너스 금리 체제도 은행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장기 금리가 하락하면 단기로 돈을 빌려 장기로 운용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예금 이자를 거의 줄 필요가 없지만 대출금리를 높게 받을 수도 없다. FT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은 마이너스 금리 체제로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부정적 효과가 부도 감소에 따른 긍정적 효과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은 은행의 부실 위험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도이치뱅크 크레디트스위스 유니크레디트 등 유럽 대표 은행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최근 급등했다.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 등으로 대규모 과징금을 내야 하는 것도 악재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9일 이런 상황을 두고 “유럽 은행에 리먼브러더스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마이너스 금리 폭 더 커질 듯

ECB가 마이너스 금리 폭을 더 키울 태세여서 앞으로 상황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일본은행 역시 지난달 말 기습적으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쓰기로 했다. 이 여파로 일본 10년물 장기국채 수익률도 한때 마이너스 구간에 진입했다. CNBC에 따르면 미국 중앙은행(Fed)도 자국 은행들에 미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 금리로 떨어질 가능성에 대비하라고 요구했다. 실제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위기상황에 대비한 스트레스테스트 성격이라고 설명했지만 종전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에 따라 ECB가 다음달 10일 통화정책회의에서 마이너스 금리 폭을 현재 연 -0.3%(중앙은행 예치금리 기준)보다 더 키울 가능성이 커졌다. FT에 따르면 그레그 푸제시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다음달 ECB가 예치금금리를 연 -0.5%로 떨어뜨리고, 6월에는 연 -0.7%까지 낮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