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탁희에 대해 말해도 될까? 탁희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탁희는 말을 못해, 탁희는 바보 같지.’ 칠판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던 탁희의 목소리가 한데 모였다가 흩어졌다. 탁희는 짧은 머리에 긴 바지를 입고 다녔다. 탁희의 그런 중성적인 이미지와 후천적 장애가 또래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호기심의 표현은 늘 엉망으로 이뤄지거나 철저하게 괴롭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일어나 먼지를 털며 웃던 탁희가 정말로 싫었다. 겨울이 왔고, 우리는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탁희는 말 못해, 탁희는 바보 같지.’ 이 말을 되풀이하며 묵묵히 교실을 나서던 탁희를 지켜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 뒷모습은 너무 고요해서 나는 내가 잠시 사라져 버린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탁희는 내 기억의 함정이 만들어낸 거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쓰오카 마사노리의 ‘가네다(金田)군의 보물’이라는 시를 읽었을 때 나는 탁희가, 탁희의 그 웃음이 너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린 서로에게 유령이기를 택함으로써, 철저하게 친구임을 숨겨왔던 것 같다.

지금의 우리는 무엇일까? 나는 그런 시선이 되고 싶은데 내 눈은 점점 더 망가진다. 어두워지면 그냥 포기해버리고 “잘 가” 하고 인사하며 등을 돌린다. 하지만 나의 방관적 시선과 태도가 탁희와 수많은 탁희들에게 쓸모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시선을 거둘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하나 똑똑하지 못하고 벅차기만 했던 제게 숨을 달아주신 김소연, 백가흠, 양연주, 장석남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저의 통곡의 문이 돼주신 권혁웅 선생님, 오래전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의 균열에 선로를 내어주신 김기택, 이원, 함돈균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서하 씨는

△1992년 경기 양주 출생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