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은행과 한국정책금융공사가 합병한 KDB산업은행이 출범한 지 1년을 맞았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12월 31일 합병 절차를 마치고 올해 1월 2일부터 '통합 산업은행'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통합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사태를 비롯해 우리나라 경제·산업 전반을 덮친 각종 구조조정 이슈로 바람 잘 날 없는 첫해를 보내야 했다.

부실기업 문제가 더욱 도드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에는 정부의 정책금융 역할 강화 방안이 시행되면서 다시 한번 변화의 격랑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 정책금융 '돌고 돌아'…올해 1월 다시 통합

1954년 창립해 6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산업은행은 2008년 산업은행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2009년 글로벌 투자은행(IB)이라는 민영화 목표를 내걸고 산은금융지주로 새 출발했다.

국가 정책 수행을 위한 공적기능을 맡을 정책금융공사는 분리 출범했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국내외 경제·금융환경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정책금융공사가 수행하는 업무가 다른 정책금융기관과 중복된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결국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책금융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는 다시 통합의 길을 걸었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분리된 지 약 4년 만인 2013년 8월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내놓고 산은금융지주를 해체하고 정책금융공사와 다시 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정책금융 기능의 기본 원칙은 ▲ 분산·중복 기능을 수요자 입장에서 재편하고 ▲ 창조경제 지원에 역량을 집중하고 ▲ 민간금융기관의 참여가 확대되는 분야는 단계적으로 축소해 불필요한 업무를 과감하게 정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토대 위에서 새로 출범한 것이 현재의 통합 산은이다.

◇ 대우조선 사태 등 구조조정 이슈로 '몸살'

산업은행은 새 출발 첫 해부터 국내 기간산업의 부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작년 말 부실화된 STX조선해양에 대한 추가 지원 문제에 이어 올해 초 동부그룹 구조조정 이슈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7월에는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이 드러나면서 주채권은행으로서의 책임론이 급부상했다.

대우조선은 올 2분기에만 3조원대의 손실을 한꺼번에 드러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특히 실사 결과 올 하반기 이후 영업외손실을 포함해 최대 3조원의 추가 손실 발생 요인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에서 대규모 부실이 연이어 공개되자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으로 최고재무책임자(CFO)까지 파견해 온 산업은행이 경영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정책금융기관으로 위상을 재정립했다면 그에 맞춰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벤처기업을 일으켜세우는 데 초점을 맞췄어야 했는데 잘 되지 않았고 그 와중에 비효율이 야기됐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이슈가 거듭되면서 재무 상황도 나빠졌다.

산업은행은 2013년 1조4천47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13년 만의 적자를 냈고, 지난해에는 당기순이익 1천835억원으로 소폭의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도 상반기 기록한 당기순이익이 2천23억원으로 여전히 2010년(1조457억원), 2011년(1조4천124억원), 2012년(9천468억원) 등 과거와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통합 당시 제시된 비전인 미래·신성장산업에 대한 금융지원 역할을 놓고도 의문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 이상직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산업은행의 대기업 대출 비중이 2011∼2014년 연평균 39.9%에서 통합 후인 올해 40.8%로 증가했다며 미래·신성장산업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 자회사 매각 '첫 단추'…대우증권 매각은 흥행 성공

산업 구조조정 이슈 속에 흔들리긴 했지만, 통합 첫해인 올해 산업은행은 중요한 '숙제' 하나를 성공리에 마친 것도 사실이다.

정책금융 역할을 재정립하면서 시장 마찰을 해소하겠다는 목표에 따라 추진해 온 금융자회사의 매각이 8부 능선을 넘은 것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8월 KDB대우증권과 산은자산운용의 패키지 매각계획을 발표한 뒤 진행한 경쟁입찰의 '흥행'에 성공했다.

대우증권 기준으로 장부가(1조8천392억원)보다 4천억원 가까이 높은 2조4천500억원 안팎을 제시한 미래에셋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산업은행으로서는 그간 지지부진하던 자회사 매각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은 물론이고, 큰 차익을 남김으로써 향후 본격화할 산업구조조정을 앞두고 자본건전성 면에서도 도움을 얻게 됐다.

산업은행 정책기획부문장인 이대현 부행장은 "매각대금을 미래성장동력산업 육성과 구조조정 등 정책금융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며 "내년에 대금이 들어오면 BIS 비율 등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데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정부의 정책금융 기능 재편안에 따라 내년에도 보유 비금융회사 지분 매각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 "산은 역할 명확하게…책임성·투명성 끌어올려야"

산업은행은 내년에도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이끌어 가는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을 고려해 산업은행의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하고 투명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산업은행을 정책금융공사와 분리해 글로벌 IB를 지향하도록 한 목표 자체는 언젠가 달성해야 할 목표였다"며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성이 불가능해졌고, 정책금융공사만으로는 부실기업을 감당할 수 없으니 산업은행에 떠넘기고 만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대형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산업은행이 떠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질타만 할 것이 아니라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경제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 관리를 맡아야 하는 산업은행 수장에는 전문성 있고 시장의 신뢰를 얻을 인물을 앉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헌 교수는 "내년 시행되는 정책금융공사 역할 강화 방안을 보면 산업은행에 중견기업을 지원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중견기업은 자본시장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며 "산업은행의 규모를 줄이고 벤처·미래성장 산업을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이지헌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