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역할 재정립 통한 민간 주도 경제체제로의 전환 필요"
"정부는 규제완화·인프라 조성에 집중해야"

중장기전략위원회가 17일 발표한 '중장기 경제발전전략'의 핵심은 앞으로 5∼10년 동안 정부 역할을 재정립해 민간이 이끄는 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그간 정부 주도로 빠른 성장을 이뤘지만, 글로벌 경제 환경이 워낙 급격히 변하고 있어 기존 방식으로는 성장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부에 '헬리콥터맘'에서 '빗자루맘'으로의 변신을 요구한 셈이다.

헬리콥터맘은 자녀 주위를 맴돌며 자녀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발벗고 나서는 엄마를 지칭한다.

빗자루맘은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장애물만 치워주는 식으로 간섭을 최소화하는 엄마를 뜻한다.

◇ "과도한 정부 보호와 규제로 기업가정신 퇴색"

지난 50년간 급속히 성장한 한국 경제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지난 2012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명 이상 국가인 '20-50 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했지만 이후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저출산·고령화와 투자 부진, 생산성 정체로 잠재성장력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성장 일변도인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은 커졌고, 이와 동시에 복지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런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한국개발연구원(KDI),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노동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과 학계로 구성된 중장기전략 연구작업반이 1년간 머리를 맞댄 결론은 '기업(민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제체제'다.

기하급수적인 기술 발전, 글로벌 경제통합, 세계경제질서 재편, 저성장과 고령화 등이 '글로벌 메가트렌드(Global Megatrend)'가 된다.

이런 트렌드는 한국의 특수성인 높은 대외개방도, 선진 정보통신기술(ICT), 급속한 고령화 등과 맞물려 우리 경제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이렇게 변화의 속도 빠른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추격형 성장 모델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과도한 보호와 규제 탓에 기업이 투자 활동에 소극적으로 변하고, 기업가정신도 퇴색한 만큼 이제 정부가 한발 물러서야 할 때라는 판단이다.

중장기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인호 무역협회장은 "경제운용을 하는 정부가 종합 조정기능을 강화하고 있지만 복잡다기한 미래사회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 "현장 잘 아는 기업이 경제 이끌고, 정부는 '조력자' 역할 맡아야"

'유연한 경제'를 만들 방안으로는 현장 중심의 경제시스템이 제시됐다.

정부 관료가 아닌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주체가 경제를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환경 변화에 따른 사업 재편이 신속하고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로는 ▲리스크 관리 ▲규제 개혁 ▲소통과 갈등관리가 꼽혔다.

이런 역할을 맡는 정부는 적극적으로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펴기보다는 안정적인 통화·재정정책으로 거시경제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대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규제는 과감하게 개혁하고, 시장 원리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에 한해서만 개입한다.

아울러 갈등 관리 능력을 키워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의 토대를 놓게 된다.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때도 정부는 '조력자'로서의 역할만 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차세대성장동력(2003∼2007), 신성장동력(2009∼2013), 미래성장동력(2015) 등 세 차례의 정책을 통해 '될 만한 산업'을 직접 골랐다.

그러나 시장에서 성공할 산업을 선택하는 정부의 역량이 민간보다 뛰어난지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이 제기됐다.

중장기전략위원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부는 어떤 산업이 우리의 다음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찾는데 집중해 왔다"며 "이제는 기업이 스스로 신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기업생태계나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 "창의·혁신 걸림돌 규제 풀고 저출산·고령화 대비해야"

한국 경제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세부 정책과제로는 사전적 규제에서 사후적 규제로의 전환이 제시됐다.

혁신이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도록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먼저 만들어놓기보다는 추후 문제가 발생하면 규제하는 것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민간이 주도적으로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신속한 사업재편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구조가 복잡해지고 생산 단계별로 부가가치 편차가 확대됐기 때문에 통상정책은 수출입 규모를 따지는 데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상품의 기획·생산·판매에 이르는 기업 가치사슬이 전 세계에 분화돼 각각 가치를 창출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이폰 부품을 일본과 한국, 독일이 만들고 제조는 중국이 하고 최종적으로 창출된 부가가치 대부분은 애플(미국)이 가져가는 식의 분업구조다.

저출산·고령화 대응책으로 정년을 단계적으로 더 연장해 노동기간과 연금수급 기간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거나, 급속히 일자리가 재편되는 상황에 맞춰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고용지원 서비스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도 나왔다.

(세종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