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증명을 수령하라. 직접 수령 못하면 전달해줄 담당자라도 나오라"(신동주 전 부회장측). "퇴거명령 3번해도 안나가면 주거침입이다.경찰 부르겠다"(신동빈 회장측).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집무실에 있는 소공동 롯데빌딩 26층에선 롯데가 형제 측근들 간에 이처럼 낯 뜨거운 설전이 이어졌다.

1시간 동안 접점 없는 실랑이가 이어지면서 롯데 경영권 분쟁 '2라운드'는 점점 막장 드라마로 변해갔다.
< 신격호 총괄회장이 차남 신동빈 회장에게 보낸 통고서 >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아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작성한 15일자 통고서. 연합뉴스
< 신격호 총괄회장이 차남 신동빈 회장에게 보낸 통고서 >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아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작성한 15일자 통고서. 연합뉴스
◇ "아버지는 내 편" vs "아버지 정신건강 이상"

드라마의 하일라이트는 아버지 신격호(94) 총괄회장을 놓고 벌이는 신동주·동빈 형제간의 웃지 못할 신경전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8일 기자 회견을 자청해 신 총괄회장의 친필 서명 위임장과, 신 총괄회장이 이를 작성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며 신동빈 회장에 대한 소송전을 선포했다.

자신의 행동이 단순히 경영권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창립자인 아버지의 뜻"이라는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은 방어 차원에서 신 총괄회장이 현재 명확한 사리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총괄회장의 위임' 자체의 무게를 낮추고 있다.

롯데는 신 전 부회장의 기자회견 직후 배포한 입장 자료에서도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총괄회장을 자신들 주장의 수단으로 다시 내세우는 상황은 도를 넘은 지나친 행위"라고 비난했다.
<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공개한 신격호 총괄회장 친필 서명 영상 >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난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 코퍼레이션 회장) 측이 8일 서울 소공동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6초 분량의 신격호 총괄회장 위임장 작성 영상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공개한 신격호 총괄회장 친필 서명 영상 >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난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 코퍼레이션 회장) 측이 8일 서울 소공동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6초 분량의 신격호 총괄회장 위임장 작성 영상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더구나 같은 날 모 인터넷 매체 기자가 신동주 전 부회장과 함께 롯데호텔 34층 신격호 회장의 집무실에 들어가 신동주 전 부회장측에 유리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발언을 전하자, 신동빈 회장은 결국 "오너 일가를 제외한 제3자가 신 총괄회장 집무실에 무단출입하지 못하게 철저히 통제하겠다"며 경호를 강화했다.

지난 8월 신격호 총괄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이일민 전무는 바로 직전 신동빈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일한 인물이다.

16일 신동주 전 부회장측이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감시와 접근 방해 중지"를 공식 요구한 것은 이 같은 신동빈 회장측의 조치에 대한 반발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으로서는 계속 신격호 총괄회장과 만나 아버지의 입을 통해 '장남에 대한 지지'를 확인받고 이를 근거로 소송 등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차남의 통제 아래 놓인 아버지를 최대한 빨리 빼낼 필요가 있다.
<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 향하는 신동주 회장 >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오른쪽)가 16일 신격호 회장 집무실이 위치한 서울 롯데호텔 신관으로 가기위해 정혜원 상무와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 향하는 신동주 회장 >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오른쪽)가 16일 신격호 회장 집무실이 위치한 서울 롯데호텔 신관으로 가기위해 정혜원 상무와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 신동주측 과도한 언론 플레이 '빈축'

신동주 전 부회장측의 지나친 언론 플레이도 이번 사태의 '드라마적' 요소를 키우고 있다.

이날 신 부회장이 공개한 신격호 회장 친필 서명으로 작성된 '통고서'는 이미 내용증명 형식의 우편으로 롯데그룹에 발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내용증명은 다음 주 중 도착할 예정이다.

결국 굳이 이날 직접 통고서를 들고 롯데그룹 본사를 찾아 '수령'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로, 다분히 언론 노출을 염두에 둔 '홍보성 방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날 SDJ코퍼레이션(대표 신동주 전 부회장)은 통고서 내용을 언론사에 보도자료 형식으로 배포했고, 오후 1시께 롯데 본사를 방문하겠다는 계획도 친절하게 알렸다.

통고서를 직접 들고 앞장선 정혜원 상무는 실랑이 끝에 돌아가며 현장의 기자들에게 "사진 많이 찍으셨죠"라며 '확인성' 코멘트까지 날렸다.

더구나 신 전 부회장측은 이날 오후 4시께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 관리를 위한 인수인계'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신동빈 회장측이 배치한 기존 경호 인력을 신동주 전 부회장측 인력으로 교체하겠다는 뜻으로, 신 회장측이 이를 방치할 리가 없는데도 이처럼 무리한 작업을 추진하는 것 역시 일종의 '퍼포먼스'를 통한 홍보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100% 승리를 자신한다"며 소송전을 천명하면서도, 법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논리를 언론에 노출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로 빈축을 사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민유성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 등 신동주 전 부회장측은 '롯데그룹 승계'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경제적 지분 가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동원했다.

의결권이 없거나 제한된 주주들을 모두 빼고 나머지 진짜 의결권을 가진 지분만을 모수(母數)로 다시 지분율을 계산하면 광윤사의 지분율이 과반인 55.8%에 이르고, 이 광윤사의 최대주주가 신동주 전 부회장(50.0%)인만큼 그룹 승계자로서 정당성을 갖췄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물론이고 법조계에서조차 "경제적 지분 가치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 듣는다"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신동빈 회장측과 비교해 조직력에서 크게 열세인 신동주 전 부회장측으로서는 이처럼 과도한 '보여주기'식 전략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이유미 이도연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