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거래소, 이제는 상장을 준비해야
한국거래소(KRX)의 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한 고비를 넘었다. 금융위원회 주도로 업계와 국회의 합의를 기반으로 한 개편안이 마련돼 다행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봉우리들이 몇 개 더 남아 있다.

먼저 KRX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 순탄치 않은 과정이 될 전망이다. KRX 노조 측은 기득권 보호를, 벤처업계는 상장요건 완화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시장감시기능의 독립성 문제, 특정지역에 대한 배려 요구 등 법 개정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전제 조건들이 있다.

이 단계를 넘으면 기업공개(IPO)라는 봉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엔 상장차익의 처리 문제부터 KRX의 공공성과 상업성의 조화를 위한 지배구조 문제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운 숙제들이 숨어 있다.

상장한 지주회사로서 KRX가 넘어야 할 그다음 산봉우리는 시장친화적 경영구조 구축을 통한 경영 효율성 확보다. 현재는 유가증권시장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와 주장을 합리적으로 조율하고 시장별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영진과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 사업구조 재편이나 전문 인력 영입 과정에서 예상되는 노사갈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가 잘 작동해야 성공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코스닥 디스카운트’를 피해 유가증권시장에 이전 상장하는 상황이 사라질 것이다. ‘코스닥시장은 창의와 혁신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멋진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상장지수펀드(ETF) 등 코스닥 연계 투자상품도 자연히 늘어날 것이다.

마지막 넘어야 할 산봉우리는 국제경쟁력 확보다. 지난 10여년간 글로벌 거래소들은 세계 거래소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합종연횡을 진행했다. 2000년 이후 거래소 간 합병이 30여건에 달한다. 이들은 글로벌 연계 및 통합 IT플랫폼 구축을 통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을 15%대까지 높였다. KRX의 ROE는 이들의 약 4분의 1에 불과하다.

특히 글로벌 거래소들이 대개 지주사 개편으로 내부 경쟁체제를 만들고, IPO를 통해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하고, 국제적 제휴를 통한 사업다각화로 경영을 혁신한 것을 배워야 한다.

지배구조개편 논의가 마무리된 지금부터는 새로운 시각에서 KRX의 상장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상장을 위한 논의 주체에는 주주와 투자자도 들어가야 한다. 엄밀히 따져보자. KRX의 주인은 지분을 80% 이상 소유하고 있는 증권회사들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증권사들은 주주로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증권사는 자본시장의 주요 주체로 KRX의 고객이자 최대 주주다. KRX의 장기 발전에 누구보다도 가장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진행될 KRX의 지주사 전환과 상장 과정에 거래소의 대주주인 증권회사들이 적극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일반투자자에게 KRX 상장은 새로운 투자 기회이기도 하다. 상장한 글로벌 거래소에 대한 증권회사의 리서치 보고서는 일본거래소 113건, 홍콩거래소 262건, 미국 나스닥 404건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KRX 관련 보고서가 증가하면 투자 기회가 늘어나는 건 물론 거래소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KRX는 내년에 환갑을 맞는다. KRX의 품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같은 대기업이 잉태돼 세계적 거목으로 자라났다. KRX가 세계 무대에 등장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내년 60주년 기념식 땐 지주사 전환과 IPO 성공이라는 멋진 잔칫상이 차려지길 기대해 본다.

황영기 < 금융투자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