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팬택 매각 불발서 얻는 교훈
팬택이 청산 수순을 밟게 됐다. 지난해 8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채권단이 세 번에 걸쳐 매각을 시도했으나 마땅한 새 주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팬택이 스스로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팬택 매각 실패의 요인으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꼽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팬택 매각이 시작된 작년 10월 단통법이 시행됐다.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이 확 줄면서 단말기 구매 수요가 급감했다. 이로 인해 팬택 매각 환경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업 현장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단통법 시행 이후 일선 휴대폰 유통점에서는 오히려 ‘팬택 살리기’에 나섰다. 유통점들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 고가 스마트폰 대신 출고가를 확 내린 팬택의 ‘베가 시리즈’를 대량 구매해 판매했다. 작년 11월 한 달간 팬택 스마트폰은 국내에서만 약 10만대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재고를 줄이고 유동자금을 마련하려는 팬택의 마케팅 전략도 영향을 미쳤지만 팬택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과 애정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팬택의 매각 실패 요인을 본질적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팬택 매각 과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화웨이 등 중국 기업과도 접촉을 해봤지만 ‘기술도 특허도 브랜드도 없는 회사를 살 이유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전했다.

팬택은 전자회사 영업사원 출신인 박병엽 부회장이 1991년 4000만원으로 창업한 뒤 현대큐리텔 SK텔레텍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외형을 키웠다. SK텔레텍을 인수한 2005년 팬택 계열 전체 매출은 3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팬택만 놓고 보면 매출 6551억원, 영업손실 423억원을 기록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두 차례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로 이어졌고 박 부회장의 성공 신화는 결국 물거품이 됐다. 한 통신 전문가는 “단말기 회사가 국내 시장에 안주해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브랜드 또는 기술 우위가 없는 기업은 매물로 나와도 팔리지 않는 시대라는 점을 팬택 매각 실패가 일깨워줬다는 것이다.

이호기 IT과학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