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라이프 오브 파이'…삼성&애플의 '공생'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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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기자의 IT's U <15회> 하편
'라이프 오브 삼성&애플'…소중한 프레너미
'앙숙 전쟁' 끝내고 공생 선택한 스마트폰 양대 제국
'라이프 오브 삼성&애플'…소중한 프레너미
'앙숙 전쟁' 끝내고 공생 선택한 스마트폰 양대 제국
# 이 기사는 '[시선+] '라이프 오브 파이'…삼성&애플의 '투쟁' <상>'에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김민성 기자 ] 이안 감독의 2012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아름답고도 처절한 생존기다. 침몰하는 화물선을 필사적으로 탈출해 좁은 구명보트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는 소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단 둘 뿐이었다.
굶주린 맹수와의 비참한 표류. 파이가 그 혹독함을 버틴 건 긴장감 때문이었다. 배고픔과 맹수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망만 다니던 파이는 생각을 고쳐먹는다. 피하고 공격하는 대신 공생을 선택한다. 굶주린 맹수에게 생선을 낚아먹인다. 리처드 파커도 어느 새 파이의 무릎을 배고 신음한다. 때론 싸우고, 때론 의지하며 기적처럼 육지에 닿는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파이는 리처드 파커에게 뒤늦은 작별인사를 건넨다.
"구해줘서 고마워. 널 영원히 잊지 않을거야." ◆ 닮아가는 애플과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애플은 이제 오히려 닮아가고 있다. 수년간 다툰 세기의 특허전 종료 이후 나온 갤럭시S6와 아이폰6이 그 시작점이다.
그래서 더 인기일까. 애플은 안드로이드의 대명사 '대화면'을 채용한 아이폰6로 사상 최대 판매고(7500만대)를 올렸다. 숙적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 시리즈로 일군 새로운 대화면 전략이었다.
화면이 3인치대로 작아야만 한손에 쥔 채 엄지로 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잡스의 철학도 6년 만에 폐기됐다. 분기 최대 매출 (746억달러), 분기 최대 순이익(180억달러)으로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을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잡스 사후 '애플 전성기도 끝났다'던 삿대질도 쏙 들어갔다.
아이폰6의 '대박'을 지켜보던 삼성전자는 갤럭시S6에 디자인 승부수를 던졌다. 수년간 고수해온 배터리 착탈 방식을 포기하고, 일체형 금속 테두리와 일체형 배터리를 처음 채택했다. 이는 아이폰 전매 특허였다. 콘센트만 보이면 벽에 붙어 충전하는 아이폰 사용자를 '벽과 포옹하는 사람(Wall Huggers)'이라고 비웃던 삼성전자였다. 하지만 미려한 디자인을 위해 결국 애플의 길을 따라갔다. 메탈과 깔끔한 유리 소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도 유사했다. "애플을 모방했다"는 비난이 일긴 했지만 아이폰6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예쁘다는 호평을 얻었다. 만년 약점이던 디자인 콤플렉스를 애플의 방식으로 극복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부터 아이폰이 써왔던 나노 유심을 채택했다. 갤럭시S5까지 마이크로 유심을 썼던 삼성전자였다. 아이폰 사용자가 갤럭시S6로 갈아타더라도 쓰던 유심을 그대로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유인책이다. 크기가 작은 나노 유심이 초슬림, 초소형 스마트폰에도 더 걸맞다. 갤럭시S와 아이폰의 주도로 LG전자 등도 신제품에 나노유심 채택율을 높일 전망이다.
갤럭시S6부터 외부 SD카드를 지원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고용량 내장형 메모리 옵션을 따로 둬 추가 이윤 구조를 만들었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갤럭시S6부터 내장형 메모리를 탑재해 메모리 용량이 올라갈 때마다 100달러씩 휴대전화 가격을 높이는 애플의 전략을 채용했다고 분석했다. 이제 두 회사는 공생하고 있다. 애플은 차세대 아이폰에 탑재할 핵심 부품인 메인칩 A9 생산을 삼성전자에 다시 맡겼다. 특허전 이후 대만 TSMC에 빼앗겼던 계약이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부터 자체 생산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트 7420을 전량 탑재했다. 반도체 기술력만큼은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라는 점을, 가장 혁신적인 아이폰7을 만들어야하는 애플도 인정한 셈이다.
삼성전자에 갤럭시S6는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출시 전부터 인기를 끌더니 지금은 사상 최대 판매고를 넘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정적 실적 전망으로 몸살을 앓은 삼성의 모바일 사업을 구원할 '메시아'로 부상했다. "애플의 맞수는 역시 삼성 뿐"이라는 평가도 이끌어냈다.
갤럭시S5의 판매 부진으로 뼈아픈 수업료를 치렀던 삼성이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과의 끝없는 경쟁이었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의 트렌드포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출하량 기준) 1위는 삼성전자(27.8%), 2위는 애플(19.9%). 그 뒤를 화웨이(7%) LG전자(6.2%) 레노버(6%) 등이 이었다.
◆ 서로가 있어 더욱 성장한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구명보트의 호랑이는 소년의 생존본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소년은 적이 있어 살아남았고, 구원과도 같은 삶의 깨달음을 곱씹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고난없는 성숙은 그래서 불가능하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frienemy). 때론 동지로 협력하고 때로는 적으로 끊임없이 경쟁하는 게 비즈니스의 세계다. 특히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게 IT업계의 명제다. 프레너미는 나를 성장시키는 고마운 존재다.
갤럭시S6 돌풍이 불자마자 공교롭게도 애플은 스마트워치 애플워치로 새로운 흥행 역사를 쓰고 있다. 스마트워치를 세계 최초로 만든 회사인 삼성전자는 상반기 내로 첫 원형스마트워치 오르비스를 공개한다.
삼성은 애플을 다시 자극할 수 있을까. 애플은 삼성에 뺏긴 왕좌를 되찾을 수 있을까. 싸움보다는 이젠 동행(同行)이 기대된다.
'라이프 오브 파이' 주제곡 'Paradise' by Coldplay
글·편집= 김민성 한경닷컴 기자 mean@hankyung.com @mean_Ray
[ 김민성 기자 ] 이안 감독의 2012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아름답고도 처절한 생존기다. 침몰하는 화물선을 필사적으로 탈출해 좁은 구명보트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는 소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단 둘 뿐이었다.
굶주린 맹수와의 비참한 표류. 파이가 그 혹독함을 버틴 건 긴장감 때문이었다. 배고픔과 맹수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망만 다니던 파이는 생각을 고쳐먹는다. 피하고 공격하는 대신 공생을 선택한다. 굶주린 맹수에게 생선을 낚아먹인다. 리처드 파커도 어느 새 파이의 무릎을 배고 신음한다. 때론 싸우고, 때론 의지하며 기적처럼 육지에 닿는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파이는 리처드 파커에게 뒤늦은 작별인사를 건넨다.
"구해줘서 고마워. 널 영원히 잊지 않을거야." ◆ 닮아가는 애플과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애플은 이제 오히려 닮아가고 있다. 수년간 다툰 세기의 특허전 종료 이후 나온 갤럭시S6와 아이폰6이 그 시작점이다.
그래서 더 인기일까. 애플은 안드로이드의 대명사 '대화면'을 채용한 아이폰6로 사상 최대 판매고(7500만대)를 올렸다. 숙적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 시리즈로 일군 새로운 대화면 전략이었다.
화면이 3인치대로 작아야만 한손에 쥔 채 엄지로 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잡스의 철학도 6년 만에 폐기됐다. 분기 최대 매출 (746억달러), 분기 최대 순이익(180억달러)으로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을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잡스 사후 '애플 전성기도 끝났다'던 삿대질도 쏙 들어갔다.
아이폰6의 '대박'을 지켜보던 삼성전자는 갤럭시S6에 디자인 승부수를 던졌다. 수년간 고수해온 배터리 착탈 방식을 포기하고, 일체형 금속 테두리와 일체형 배터리를 처음 채택했다. 이는 아이폰 전매 특허였다. 콘센트만 보이면 벽에 붙어 충전하는 아이폰 사용자를 '벽과 포옹하는 사람(Wall Huggers)'이라고 비웃던 삼성전자였다. 하지만 미려한 디자인을 위해 결국 애플의 길을 따라갔다. 메탈과 깔끔한 유리 소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도 유사했다. "애플을 모방했다"는 비난이 일긴 했지만 아이폰6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예쁘다는 호평을 얻었다. 만년 약점이던 디자인 콤플렉스를 애플의 방식으로 극복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부터 아이폰이 써왔던 나노 유심을 채택했다. 갤럭시S5까지 마이크로 유심을 썼던 삼성전자였다. 아이폰 사용자가 갤럭시S6로 갈아타더라도 쓰던 유심을 그대로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유인책이다. 크기가 작은 나노 유심이 초슬림, 초소형 스마트폰에도 더 걸맞다. 갤럭시S와 아이폰의 주도로 LG전자 등도 신제품에 나노유심 채택율을 높일 전망이다.
갤럭시S6부터 외부 SD카드를 지원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고용량 내장형 메모리 옵션을 따로 둬 추가 이윤 구조를 만들었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갤럭시S6부터 내장형 메모리를 탑재해 메모리 용량이 올라갈 때마다 100달러씩 휴대전화 가격을 높이는 애플의 전략을 채용했다고 분석했다. 이제 두 회사는 공생하고 있다. 애플은 차세대 아이폰에 탑재할 핵심 부품인 메인칩 A9 생산을 삼성전자에 다시 맡겼다. 특허전 이후 대만 TSMC에 빼앗겼던 계약이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부터 자체 생산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트 7420을 전량 탑재했다. 반도체 기술력만큼은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라는 점을, 가장 혁신적인 아이폰7을 만들어야하는 애플도 인정한 셈이다.
삼성전자에 갤럭시S6는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출시 전부터 인기를 끌더니 지금은 사상 최대 판매고를 넘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정적 실적 전망으로 몸살을 앓은 삼성의 모바일 사업을 구원할 '메시아'로 부상했다. "애플의 맞수는 역시 삼성 뿐"이라는 평가도 이끌어냈다.
갤럭시S5의 판매 부진으로 뼈아픈 수업료를 치렀던 삼성이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과의 끝없는 경쟁이었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의 트렌드포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출하량 기준) 1위는 삼성전자(27.8%), 2위는 애플(19.9%). 그 뒤를 화웨이(7%) LG전자(6.2%) 레노버(6%) 등이 이었다.
◆ 서로가 있어 더욱 성장한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구명보트의 호랑이는 소년의 생존본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소년은 적이 있어 살아남았고, 구원과도 같은 삶의 깨달음을 곱씹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고난없는 성숙은 그래서 불가능하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frienemy). 때론 동지로 협력하고 때로는 적으로 끊임없이 경쟁하는 게 비즈니스의 세계다. 특히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게 IT업계의 명제다. 프레너미는 나를 성장시키는 고마운 존재다.
갤럭시S6 돌풍이 불자마자 공교롭게도 애플은 스마트워치 애플워치로 새로운 흥행 역사를 쓰고 있다. 스마트워치를 세계 최초로 만든 회사인 삼성전자는 상반기 내로 첫 원형스마트워치 오르비스를 공개한다.
삼성은 애플을 다시 자극할 수 있을까. 애플은 삼성에 뺏긴 왕좌를 되찾을 수 있을까. 싸움보다는 이젠 동행(同行)이 기대된다.
'라이프 오브 파이' 주제곡 'Paradise' by Coldplay
글·편집= 김민성 한경닷컴 기자 mean@hankyung.com @mean_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