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객원大기자 2015 한국을 말하다…진영논리·집단利己 '덫' 빠져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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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설득의 리더십 절실
새해가 밝았다. 사회생활을 기자로 시작해 20년을 국회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2015년 정치권의 풍향을 소망과 제언을 곁들여 전망해본다. 우선 지난해 너무나도 가슴 아픈 참사를 겪고 나니 올해만큼은 대한민국호(號)가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순항하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제발 서로 싸우지 말고 화합하기를, 공권력이 바로 서고 소신 있는 장관과 책임지는 정치인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제 할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존경받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무엇보다 비난과 선동에 기대어 작은 문제를 크게 만들고 분노와 갈등을 부추겨 이익을 얻거나 각광받으려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금년만큼은 이런 기대와 바람이 며칠만 지나면 부질없는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지난해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은 우리 모두의 부족함과 부끄러운 현실을 세상천지에 아프게 드러낸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나라의 지도자란 사람들이 역할을 제대로 못 함으로써 리더십은 실종되고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동전의 한쪽 면만 보며 그것만이 전부이고 진실인 양 주장하니 동전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공감도 이해도 설득도 될 리가 없었다. 겨우겨우 수습은 됐지만 언제 다른 식으로 폭발할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잃어버린 리더십을 이순신 장군에게서 찾으려고 지난해 여름과 가을 ‘명량’ 앞바다가 인파로 뒤덮였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인정과 가족애로 이겨냈던 그 시절이 그리워 사람들은 해를 넘긴 오늘도 ‘국제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 두 영화는 우리의 가슴을 뜨거운 눈물로 적셨건만 돌아오는 일상은 여전히 허전하다. '명량'의 이순신…'국제시장' 덕수처럼 희생하는 참된 정치인 보고 싶다
새해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경제 환경은 전망이 어둡다.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향후 상당 기간 우리의 좌표가 결정될 텐데 국정 운영은 탄력을 받기가 힘든 처지다. 잠복된 ‘암 덩어리’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져 나올지 모른다. 지도자들의 발언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국정지표가 자주 바뀌고 추진 전략이 분명치 않다. 정부가 작년 초 힘차게 내걸었던 규제 개혁은 역대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또 흐지부지 상태다. 연말까지 해내겠다던 공무원연금 개혁은 정치권에서 힘든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사학·군인연금 개혁은 정부와 여당이 서로 떠넘기려고 핑곗거리를 찾는 모양새다.
역대 정권들이 쉬쉬해왔던 문제들이 하나둘씩 불거져 나오는데 이를 떠맡을 주체 세력도 철학도 안 보이고, 준비도 덜 된 것 같다. 실천 의지가 없는 정부, 말만 내뱉는 정치권, 한사코 반대하는 이해 당사자, 침묵하는 수혜자, 한 쪽면만 부각하는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 우리 사회는 진영논리와 집단 이기주의라는 두 가지 덫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민주 정의 개혁 공평 같은 고상한 말들은 본질을 숨긴 사탕발림이거나 까고 또 까도 핵심이 없는 양파 껍질같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본질 숨긴 사탕발림 개혁·정의…
원자력 발전소 도면 유출 사건도 기막히지만 더 심각한 건 수조를 가득 채워가고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다. 장갑, 옷가지 등을 처리하는 저준위 방폐장 시설에 30년이 걸린 나라인데, 이런 고준위 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동안 나 몰라라 하며 ‘폭탄 돌리기’를 해온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해마다 들쑥날쑥 널뛰기하는 대학 입시 정책, 인구 급감으로 비어가는 대학 캠퍼스 구조조정, 갈수록 자급률이 떨어지고 중앙정부 의존율은 높아만 가는 지방자치단체, 권력의 눈치를 보는 듯한 검찰과 경찰, ‘관피아’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일은 안 하면서 정년만 채우고 보자는 식의 공무원 보신주의, 아직은 괜찮다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 부채, 대다수 노동자는 노조조차 만들지 못하건만 2000만 노동자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듯 행세하는 소수의 억대 노동자와 노총 지도부, 농민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식량 안보와 쌀 보호 논리에 묶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벌의 지배구조와 기업 경영문화 쇄신이 시급한데도 ‘땅콩 리턴’ 사건에서 보듯 기업을 여전히 사유물인 양 여기는 일부 23세들, 낮잠 자는 법안과 위압적인 국회 운영….
올해는 박근혜 정부 3년차다. 5년 임기 중 유일하게 큰 선거가 없는 해다. 그러나 내년 4월엔 정권의 향방을 가를 20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고, 내후년이면 새 대통령을 뽑는다. 올해 가을로 접어들기 무섭게 국회를 중심으로 스릴(?) 넘치는 권력 쟁탈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 시간은 박근혜 대통령 편이 아니다. 더구나 비서실 내부 문건까지 터져 안팎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새해를 맞았다. 여론은 대통령의 인사 및 소통 방식에 의문이 많고 불만이 깊다. 대통령부터 변하고 바뀐 모습을 보이도록 요구하고 있다. 사태는 엄중하고 시간은 부족하다. 벌써 이곳저곳에서 발목잡기에 들어갔다.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이자 맹점이다. 정직하고 진지하게 다가가야 문제 풀려
이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 해결되리라고 기대하는 국민도 없다. 과욕도 게으름도 문제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하고 정직한 자세로 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은 그런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시대가 바뀌고 국민의 의식과 수준이 달라졌는데 우리 정치권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결국 이는 다시 리더십과 신뢰의 문제다. 신뢰를 잃으면 리더십은 생길 수가 없다. 국민이 나의 충정과 헌신을 몰라준다 할 것이 아니라 나를 믿고 따르게끔 내가 진심으로 행동했는가를 반추해야 한다. 머리와 입술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가슴으로 대화해야 한다. 남의 아픔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 기독교의 긍휼과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정치가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초연결사회…정치권 아날로그 소통도 안돼
고 대 그리스에선 지도자의 필수 요건이 ‘아레테(arete)’였다. ‘덕(virtue)’으로도 번역되는 이 말은 초기엔 적과 위험 앞에서의 용기, 견해가 다른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을 의미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뜻이 풍부해졌지만 애초 의미는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 2600년 전 고대의 지도자들이 가졌던 용기와 설득의 노력은 지금 이 시대 한국 정치인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다.
고함지르고 삿대질하는 것이 용기가 아니다. 밤을 새우는 일이 있어도 치열하게 토론하는 길이 상대방은 아닐지라도 국민을 설득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변화를 요구했지만 속은 안 바꾸고 껍데기만 바꾸어 왔다. 수시로 떼었다 붙였다 하는 당의 간판도 문제지만 국회의원 공천 물갈이를 많이 한다고 좋은 정당이 되진 않는다. 존속 여부를 고민해야 할 비례대표를 오히려 확충하자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 식으론 정치를 바꿀 수 없다.
21세기는 그 어떤 시대에도 겪어보지 못한 문명사적 전환기다. 얼마 전 중국 우전(烏鎭)에서 열린 제1회 세계인터넷대회(WIC)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왔다. 슬로건이 ‘개방, 참여, 공유’였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시대의 핵심을 알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의 등장으로 세계는 초연결사회로 숨 가쁘게 달려가는데 아직도 우리 정치는 아날로그적 소통과 연결조차 안 되고 있다.
지금처럼 국민과의 연결 방식이 서툴고 소통이 제대로 안 된다면 그렇잖아도 직접민주주의 방식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표출되는 현실에서 국회로 상징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 정치인의 신뢰 수준은 최하위(97위)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이류임을, 선진국 수준의 국민이 되려면 까마득하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좌절은 금물이다. 과거 동남아 어느 국가도 한국보다 가난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어떤 국가도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가 없다. 많은 나라가 한국의 원조와 지원을 받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다들 열심히 뛰었지만 우리는 성공했고, 그들은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30년 만에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모두 이룬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어디 있는가.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4년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167개국 중 21위다. 미국(19위) 일본(20위) 바로 다음이다. WEF도 2014~2015년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세계 26위로 평가했다. 남북이 분단되고, 노사 갈등이 끊이지 않고(132위), 정치인이 제 역할을 못해 순위를 끌어내리는 나라란 걸 감안하면 대단하지 않은가.
정치 잘못되면 국민만 피곤해져
21세기의 가열한 국내외적 환경을 살펴보면 우리 정치인들에게 지적 통찰력과 책임감은 앞서 말한 여러 덕목에 더해야 할 필수 요건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결국 모든 것은 정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잘 되면 나라가 살고 정치를 잘못하면 국민이 피곤하다. 그 정치인은 국민이 뽑는다. 바라건대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아놓고 큰소리치는 국민 모습을 보고 싶다.
대통령 선거가 3년도 안 남았는데 유력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현상이다.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인지 몸을 사려서인지 모르겠지만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희망 섞인 기대를 해본다. 앞서 지적한 여러 덕목을 갖추기에 3년이란 시간은 충분하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열심히 갈고 닦는다면 어느덧 차기 대권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더불어 제대로 된 정치인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명량’의 이순신처럼, ‘국제시장’의 덕수처럼 희생과 헌신으로 앞장서는 이를 국민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정치권에서 보고 싶어 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린다. 그런 정치인을 국민은 반드시 기억하고 평가할 것이다. 새해에는 나쁜 뉴스가 아닌 기분 좋은 뉴스, 박수쳐주고 싶어지는 기사들로 신문 정치면이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제 할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존경받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무엇보다 비난과 선동에 기대어 작은 문제를 크게 만들고 분노와 갈등을 부추겨 이익을 얻거나 각광받으려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금년만큼은 이런 기대와 바람이 며칠만 지나면 부질없는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지난해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은 우리 모두의 부족함과 부끄러운 현실을 세상천지에 아프게 드러낸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나라의 지도자란 사람들이 역할을 제대로 못 함으로써 리더십은 실종되고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동전의 한쪽 면만 보며 그것만이 전부이고 진실인 양 주장하니 동전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공감도 이해도 설득도 될 리가 없었다. 겨우겨우 수습은 됐지만 언제 다른 식으로 폭발할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잃어버린 리더십을 이순신 장군에게서 찾으려고 지난해 여름과 가을 ‘명량’ 앞바다가 인파로 뒤덮였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인정과 가족애로 이겨냈던 그 시절이 그리워 사람들은 해를 넘긴 오늘도 ‘국제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 두 영화는 우리의 가슴을 뜨거운 눈물로 적셨건만 돌아오는 일상은 여전히 허전하다. '명량'의 이순신…'국제시장' 덕수처럼 희생하는 참된 정치인 보고 싶다
새해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경제 환경은 전망이 어둡다.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향후 상당 기간 우리의 좌표가 결정될 텐데 국정 운영은 탄력을 받기가 힘든 처지다. 잠복된 ‘암 덩어리’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져 나올지 모른다. 지도자들의 발언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국정지표가 자주 바뀌고 추진 전략이 분명치 않다. 정부가 작년 초 힘차게 내걸었던 규제 개혁은 역대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또 흐지부지 상태다. 연말까지 해내겠다던 공무원연금 개혁은 정치권에서 힘든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사학·군인연금 개혁은 정부와 여당이 서로 떠넘기려고 핑곗거리를 찾는 모양새다.
역대 정권들이 쉬쉬해왔던 문제들이 하나둘씩 불거져 나오는데 이를 떠맡을 주체 세력도 철학도 안 보이고, 준비도 덜 된 것 같다. 실천 의지가 없는 정부, 말만 내뱉는 정치권, 한사코 반대하는 이해 당사자, 침묵하는 수혜자, 한 쪽면만 부각하는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 우리 사회는 진영논리와 집단 이기주의라는 두 가지 덫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민주 정의 개혁 공평 같은 고상한 말들은 본질을 숨긴 사탕발림이거나 까고 또 까도 핵심이 없는 양파 껍질같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본질 숨긴 사탕발림 개혁·정의…
원자력 발전소 도면 유출 사건도 기막히지만 더 심각한 건 수조를 가득 채워가고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다. 장갑, 옷가지 등을 처리하는 저준위 방폐장 시설에 30년이 걸린 나라인데, 이런 고준위 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동안 나 몰라라 하며 ‘폭탄 돌리기’를 해온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해마다 들쑥날쑥 널뛰기하는 대학 입시 정책, 인구 급감으로 비어가는 대학 캠퍼스 구조조정, 갈수록 자급률이 떨어지고 중앙정부 의존율은 높아만 가는 지방자치단체, 권력의 눈치를 보는 듯한 검찰과 경찰, ‘관피아’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일은 안 하면서 정년만 채우고 보자는 식의 공무원 보신주의, 아직은 괜찮다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 부채, 대다수 노동자는 노조조차 만들지 못하건만 2000만 노동자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듯 행세하는 소수의 억대 노동자와 노총 지도부, 농민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식량 안보와 쌀 보호 논리에 묶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벌의 지배구조와 기업 경영문화 쇄신이 시급한데도 ‘땅콩 리턴’ 사건에서 보듯 기업을 여전히 사유물인 양 여기는 일부 23세들, 낮잠 자는 법안과 위압적인 국회 운영….
올해는 박근혜 정부 3년차다. 5년 임기 중 유일하게 큰 선거가 없는 해다. 그러나 내년 4월엔 정권의 향방을 가를 20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고, 내후년이면 새 대통령을 뽑는다. 올해 가을로 접어들기 무섭게 국회를 중심으로 스릴(?) 넘치는 권력 쟁탈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 시간은 박근혜 대통령 편이 아니다. 더구나 비서실 내부 문건까지 터져 안팎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새해를 맞았다. 여론은 대통령의 인사 및 소통 방식에 의문이 많고 불만이 깊다. 대통령부터 변하고 바뀐 모습을 보이도록 요구하고 있다. 사태는 엄중하고 시간은 부족하다. 벌써 이곳저곳에서 발목잡기에 들어갔다.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이자 맹점이다. 정직하고 진지하게 다가가야 문제 풀려
이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 해결되리라고 기대하는 국민도 없다. 과욕도 게으름도 문제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하고 정직한 자세로 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은 그런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시대가 바뀌고 국민의 의식과 수준이 달라졌는데 우리 정치권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결국 이는 다시 리더십과 신뢰의 문제다. 신뢰를 잃으면 리더십은 생길 수가 없다. 국민이 나의 충정과 헌신을 몰라준다 할 것이 아니라 나를 믿고 따르게끔 내가 진심으로 행동했는가를 반추해야 한다. 머리와 입술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가슴으로 대화해야 한다. 남의 아픔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 기독교의 긍휼과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정치가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초연결사회…정치권 아날로그 소통도 안돼
고 대 그리스에선 지도자의 필수 요건이 ‘아레테(arete)’였다. ‘덕(virtue)’으로도 번역되는 이 말은 초기엔 적과 위험 앞에서의 용기, 견해가 다른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을 의미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뜻이 풍부해졌지만 애초 의미는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 2600년 전 고대의 지도자들이 가졌던 용기와 설득의 노력은 지금 이 시대 한국 정치인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다.
고함지르고 삿대질하는 것이 용기가 아니다. 밤을 새우는 일이 있어도 치열하게 토론하는 길이 상대방은 아닐지라도 국민을 설득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변화를 요구했지만 속은 안 바꾸고 껍데기만 바꾸어 왔다. 수시로 떼었다 붙였다 하는 당의 간판도 문제지만 국회의원 공천 물갈이를 많이 한다고 좋은 정당이 되진 않는다. 존속 여부를 고민해야 할 비례대표를 오히려 확충하자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 식으론 정치를 바꿀 수 없다.
21세기는 그 어떤 시대에도 겪어보지 못한 문명사적 전환기다. 얼마 전 중국 우전(烏鎭)에서 열린 제1회 세계인터넷대회(WIC)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왔다. 슬로건이 ‘개방, 참여, 공유’였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시대의 핵심을 알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의 등장으로 세계는 초연결사회로 숨 가쁘게 달려가는데 아직도 우리 정치는 아날로그적 소통과 연결조차 안 되고 있다.
지금처럼 국민과의 연결 방식이 서툴고 소통이 제대로 안 된다면 그렇잖아도 직접민주주의 방식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표출되는 현실에서 국회로 상징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 정치인의 신뢰 수준은 최하위(97위)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이류임을, 선진국 수준의 국민이 되려면 까마득하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좌절은 금물이다. 과거 동남아 어느 국가도 한국보다 가난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어떤 국가도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가 없다. 많은 나라가 한국의 원조와 지원을 받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다들 열심히 뛰었지만 우리는 성공했고, 그들은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30년 만에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모두 이룬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어디 있는가.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4년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167개국 중 21위다. 미국(19위) 일본(20위) 바로 다음이다. WEF도 2014~2015년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세계 26위로 평가했다. 남북이 분단되고, 노사 갈등이 끊이지 않고(132위), 정치인이 제 역할을 못해 순위를 끌어내리는 나라란 걸 감안하면 대단하지 않은가.
정치 잘못되면 국민만 피곤해져
21세기의 가열한 국내외적 환경을 살펴보면 우리 정치인들에게 지적 통찰력과 책임감은 앞서 말한 여러 덕목에 더해야 할 필수 요건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결국 모든 것은 정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잘 되면 나라가 살고 정치를 잘못하면 국민이 피곤하다. 그 정치인은 국민이 뽑는다. 바라건대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아놓고 큰소리치는 국민 모습을 보고 싶다.
대통령 선거가 3년도 안 남았는데 유력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현상이다.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인지 몸을 사려서인지 모르겠지만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희망 섞인 기대를 해본다. 앞서 지적한 여러 덕목을 갖추기에 3년이란 시간은 충분하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열심히 갈고 닦는다면 어느덧 차기 대권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더불어 제대로 된 정치인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명량’의 이순신처럼, ‘국제시장’의 덕수처럼 희생과 헌신으로 앞장서는 이를 국민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정치권에서 보고 싶어 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린다. 그런 정치인을 국민은 반드시 기억하고 평가할 것이다. 새해에는 나쁜 뉴스가 아닌 기분 좋은 뉴스, 박수쳐주고 싶어지는 기사들로 신문 정치면이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