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강남역 뒷골목의 모습.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 중 하나지만 과당경쟁과 비싼 임차료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점포가 적지 않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24일 서울 강남역 뒷골목의 모습.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 중 하나지만 과당경쟁과 비싼 임차료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점포가 적지 않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부산 사상구에 자리한 도소매 쇼핑몰 ‘르네시떼’는 독특한 협업 체제로 운영된다. 이 쇼핑몰의 2600개 매장 상인은 관리비를 거둬 전문경영인에게 시장 운영을 전담시킨다. 운영관리본부는 마케팅 활동과 함께 주차장 관리, 건축물 보수 등의 부대 업무를 맡는다. 또 상인들의 판매 상품이 중첩되지 않도록 사전 조율하는 역할도 한다. 15년 전 개장한 르네시떼가 ‘부산의 동대문’이라 불리면서 지역 대표 도소매시장으로 성장한 배경이다.

[침몰하는 자영업, 탈출구를 찾아라] 골목상권에 '한국판 길드'制 도입
정부는 내년 골목상권 상인과 건물주의 협업 공동체를 유도하는 ‘한국판 길드(Guild)’ 상권관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유럽에 뿌리를 둔 길드가 상공업자의 동업 조합 방식인 것과 달리 한국판 길드는 지역 상권 조합 개념이다. 낙후된 상권의 자영업자와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법인체를 만들어 상권을 개발하고 관리한다는 게 이 제도의 핵심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연내 상권관리법을 만들어 내년 국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상권관리제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제도다. 미국 뉴욕의 유명 관광지인 타임스스퀘어와 패션지구, 샌프란시스코의 유니언스퀘어 등이 지역 상인과 건물주 등 민간 주도 하에 발전한 상권들이다.

정부는 국내에서도 부산 르네시떼처럼 영세 상인들이 힘을 합치면 상권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권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쇠퇴한 상권 5~10곳을 선정해 시범적으로 운영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하던 하향식 육성책에서 벗어나 상인들이 주체적으로 상권을 키우도록 유도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상권관리제의 핵심은 상권관리 법인체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지역 자영업자와 건물주가 주민투표 등을 거쳐 상권관리 법인을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아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승인을 얻게 되면 해당 지역의 모든 자영업자와 건물주는 강제적으로 운영 지침을 따라야 한다. 이 지침으로 상권의 과잉업종이나 프랜차이즈 진입을 제한하거나 진입 조건으로 부담금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이 인위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무리 과당경쟁과 공급과잉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해당 지역 내 개개인의 경제적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9년 전에도 자영업 진입을 인위적으로 막으려다 비난 여론에 직면한 경험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상권관리제 활성화를 위해 운영비를 매칭 방식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해당 상권관리 조직이 전체 운영비의 20%를 대면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40%씩 부담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입간판·야외테이블 설치 규제 등도 풀어준다.

정부는 또 영세 자영업자가 업종을 바꾸거나 폐업하는 경우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자영업자가 임금근로자로 재취업할 경우 폐업-취업-정착 단계에 맞춰 컨설팅·취업장려금·채무조정을 제공하는 ‘희망리턴 패키지’를 도입해 연간 자영업자 1만명의 임금근로자 전환을 지원하기로 했다. 연매출 8000만원 미만 자영업자에 한해 100만원을 지급한다.

또 건물주가 신규 임차인과 계약할 때까지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 임대보증금 단기대출에 나서기로 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