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기숙사와 고시촌
요즘 《B사감과 러브레터》의 노처녀 사감 같은 딱장대(딱딱하기 짝이 없는 사람)는 드물지만, 여대 기숙사의 통행금지 시간은 여전히 엄격하다. 서울시내 여대의 평일 통금은 대부분 밤 11시30분이고 이화여대는 12시다. 12시 넘어 들어오면 부모에게 알린다. 그나마 남녀공학은 새벽 1시로 조금 여유가 있다.

기숙사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에도 있었다. 지금과 비슷한 개념은 중세 유럽의 수도원과 대학에서 시작됐다. 모든 학생을 기숙사에 수용하는 기숙학교도 많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 300여명을 전원 기숙사에 수용했다. 현대에 들어 기숙사 수요가 급증하자 거주 기간에 제한을 두는 방식이 등장했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내 54개 대학의 지방 학생 비율이 30%(14만여명)에 이르는데 기숙사 수용률은 7%(3만여명)밖에 안 된다. 나머지 학생들은 월 10만~20만원 더 내고 원룸이나 고시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졸업을 늦추는 경우까지 겹쳐 기숙사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대학들도 고민이다. 기숙사를 짓고 싶어도 대학가 원룸·하숙집 주인들의 반발 때문에 애를 먹는다. 해당 구청이 주민의 민원을 해결해야 허가해주겠다고 떠미는 바람에 착공도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 학생들은 수천명씩 맞불 민원을 내고 있다.

마침 법원이 ‘주민 민원을 이유로 기숙사 건축을 막을 순 없다’는 판결을 내놓음으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된 듯하다. 물론 대학들이 서구 사회처럼 지역협력과 유대강화로 화답하는 것도 필요하다.

집단민원은 신림동 고시촌에서도 불거졌다. 주민들이 2017년으로 확정된 ‘사법시험 폐지’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사법시험 준비생이 줄어드는 바람에 빈 방이 늘어 수입이 쪼그라들었다는 게 이유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5년이나 지난 지금으로선 옹색한 주장이다. 자칫 ‘떼법’으로 오해받기 쉽다. 오히려 젊은 직장인이나 신혼부부, 로스쿨 변호사시험 재수생 등 새로운 수요를 찾아 나서는 게 급선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이해관계도 복잡해진다. 중요한 건 트렌드 변화를 빨리 읽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마차와 인력거를 보호한답시고 자동차의 등장을 막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이와 함께 ‘더불어 잘사는’ 지혜도 찾아야 한다. 상생의 꽃은 대립보다 공감의 밭에서 피어난다. B사감이 밤중에 러브레터 속 주인공과 상상연애를 하는 장면을 보고 안쓰러워 눈물을 훔치는 여학생의 마음도 그랬듯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