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민주노총의 '정치 20년' 반성문
지난 23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빌딩. 사무국 조합원들이 대부분 빠져나가 건물 전체가 조용했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15층 교육원의 분위기는 사뭇 무거웠다. 민주노총이 이달 초 상무집행위원회에서 중장기적인 정치방침 수립 계획을 세우기로 한 이후 열린 첫 토론회였다. 토론 주제는 ‘민주노총 정치활동 20년,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였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사회로 시작한 토론회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바람을 타고 2004년 총선에서 어렵게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정치세력화에 성공하는 듯하다가 조합과 정당과의 유기적인 관계 설정에 실패하면서 존재감을 잃어가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주를 이뤘다.

현직 조합원이거나 조합원 출신의 ‘식구’들로 이뤄진 토론 패널이었지만, 비판의 정도는 가볍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정당에 ‘돈 대주고 표 찍어주는’ 수준의 ‘자판기 노조’였다는 표현이 나오는가 하면 한 번도 전체 조합원의 5%를 넘기지 못한 진보당의 당원 비율을 두고는 조합원들의 지지 없는 ‘그들만의 리그’였다는 반성도 있었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분열 당시 ‘종북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과 대안 제시가 없었다는 점도 지적됐다.

민주노총 자체의 한계점도 도마에 올랐다. 이근원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비정규직과 영세 노동자를 끌어안지 못하고,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민주노총의 오랜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날 참석자는 토론 패널 6명을 제외하고는 10여명이 고작이었다. 저조한 참석률에 “오늘 이 모습이 민주노총 정치활동의 현주소”라는 사회자의 말에 분위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민주노총은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다섯 차례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다. 2016년 새 정치방침을 정하고,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진영 단일후보를 내겠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계획이지만 분열을 거듭한 끝에 정치권에서 존재감마저 약해진 게 현주소다. 반성문을 쓴 것처럼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되기 위해선 뼈를 깎는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

백승현 지식사회부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