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KB의 명운, 사외이사에 달렸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그들만의 리그’로 불린다. 이사회 멤버는 10명. 사외이사가 9명이다. 나머지 1명은 회장이다. 회장 후보를 선출할 때는 회장이 빠진다. 사외이사 9명이 회장 후보를 뽑는다. 사외이사를 선출할 때도 그렇다. 사외이사가 사외이사를 추천한다. 사외이사 천국이다(게다가 보수도 많다). 사외이사의 마음만 얻으면 회장도 사외이사도 될 수 있다.

사외이사의 위력은 여러 번 나타났다. 2009년엔 금융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독 후보였던 강정원 국민은행장을 회장 후보로 선출하는 뚝심을 보였다. 2010년엔 누구나 아는 ‘MB맨’이었던 어윤대 씨를 회장 후보로 뽑으면서도 5 대 4의 표결로 ‘불만’을 드러냈다. 이른바 ‘낙하산’도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줬다.

10명 넘는 자천타천 후보들

이런 사외이사들이 회장 후보 선출을 앞두고 고민에 빠진 것 같다. 벌써 10여명이 넘는 후보가 거론되지만 마땅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다. 고민을 유추하면 이렇다.

‘이번엔 금융당국이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실제 지금까지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KB금융 회장과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노골적인 낙하산도 없을 것 같다. ‘관피아’ 소동을 감안하면 관료 출신은 힘들다. 내부 출신을 뽑으면 좋겠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내부 출신은 대부분 주전산기 교체사건 등으로 ‘별(징계)’을 달았다. 외부에서 모셔오자니 마땅한 사람이 없다. 다른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사람들이 거론되지만, 그들이 은근히 내세우는 ‘뒷배’를 생각하면 선뜻 내키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사외이사들은 금융위원회가 임영록 전 회장에게 왜 중징계(직무정지 3개월)를 내렸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법리로만 따진다면 임 전 회장에 대한 중징계는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임 전 회장은 2만5000여명이 일하는 KB금융의 CEO였다. 이유야 어떻든 내분사태를 빨리 끝내야 할 책임이 그에게 있었다. 4개월을 끌어온 내분사태에 대해 CEO로서 포괄적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었다.

무한책임질 회장 후보 찾아야

이렇게 보면 답은 분명해진다. 조직에 뜨거운 애정을 갖고, 무한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회장으로 뽑는 것이다. 물론 노조의 주장대로 내부 출신이면 더욱 좋다. 하지만 ‘1채널’이니 ‘2채널’이니 하면서 편을 가르는 사람은 곤란하다. 합리적이고 소통할 줄 아는 CEO라며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는 사람은 더욱 안된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의 독불장군도 힘들다. 내분사태로 갈라진 조직을 단기간 내 통합하고 KB금융의 저력을 되찾는 데 온몸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면 웬만한 흠쯤은 덮어줘도 된다. 내부에 없으면 외부에서라도 찾아야 한다.

이런 능력을 보여준 사람이 없다고? 무슨 말씀을.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도 있고,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도 있다. 아니면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도 있다. 너무 연로하거나 이런저런 흠결을 가졌다고? 맞는 말이다. 이들을 모셔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두 눈 부릅뜨고 이런 사람을 내·외부에서 찾아보라는 얘기다. 내분사태에 대한 공동 책임론에 직면한 사외이사들이 책임론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