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카드 단말기 교체비용 잡음
“이러다 대형 가맹점들의 IC단말기 교체비용마저 카드사들에 떠넘기는 거 아닌지 걱정될 정도입니다.”

한 카드사 고위임원이 신용카드 사용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IC단말기 교체를 두고 걱정스레 전한 말이다. 내막은 이렇다. 1억건이 넘는 카드회원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터지자 정부는 보안이 취약한 마그네틱(MS) 방식의 가맹점 단말기를 IC단말기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4월 밝혔다. 내년까지 IC카드 단말기 교체를 완료하고, 2016년부터는 모든 카드가맹점에서 IC결제를 의무화한다는 일정이다.

제일 큰 문제는 교체 비용이었다. 영세가맹점들이 돈이 없다며 단말기 교체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신용카드사들이 1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영세가맹점의 단말기 교체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유출사태의 당사자라는 원죄를 안고 있는 카드사들이지만 생돈 1000억원을 내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카드사들의 대승적인 양보 이후 IC단말기로의 교체는 순항할 것으로 전망됐다. 중대형가맹점들은 개별적으로 단말기를 설치할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1000억원의 기금 조성안이 나온 뒤에도 전환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형가맹점들이 시간과 비용 상의 문제를 들며 IC단말기 교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서다. 이 탓에 당초 지난 7월로 예정돼 있던 IC단말기 전환 시범사업은 올 연말로 연기됐다. 지난해 미국의 대형유통업체 타깃에서 정보유출 사고가 터진 후 가맹점 중심으로 IC단말기 교체에 나선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핑퐁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영세가맹점 기금 조성에서 카드사들의 손목을 비트는 편법을 동원한 후유증때문이다. 가맹점 대신 카드사들에 비용을 전가하며 ‘수익자 부담’ 원칙이 무너진 것을 본 대형가맹점과 밴사들도 일단 버티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초유의 정보유출 사태를 통해 가맹점에서 정보유출이 발생하면 그 피해가 국민들에게 직결된다는 점이 입증됐다. 지난 교훈을 잊지 않는 금융당국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