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제소 가능성 시사…"유엔 총회서도 다뤄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와 관련, '벌처펀드'(Vulture fund)에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벌처펀드는 죽은 동물의 시체를 뜯어먹는 독수리(vulture)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의 채권이나 국채 등을 낮은 가격에 사들이고 나서 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더 많은 돈을 받아내는 헤지펀드를 말한다.

아르헨티나를 디폴트 위기로 몰아넣은 벌처펀드는 'NML 캐피털'과 '아우렐리우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 2곳의 미국 헤지펀드로 13억3천만 달러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전날 저녁 TV 연설을 통해 "벌처펀드에 더 많은 돈을 지급하지 않도록 모든 법적 수단과 국내외 권리를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헤지펀드와 채무상환 협상을 하겠다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입장이 개도국 그룹인 G77과 중국, 남미국가연합,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등 국제사회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01년 1천억 달러 규모의 디폴트를 선언한 이후 2005년과 2010년에 채무조정 협상에 나서 93%의 채권자와 기존 채권의 최대 75%가량을 탕감받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NML 캐피털과 아우렐리우스 캐피털은 이 합의안을 거부하고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부채 상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채권을 4천800만 달러 정도에 사들였으나 소송에서는 액면가대로 13억3천만 달러를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법원은 아르헨티나가 이들과의 채무상환에 합의하기 전에는 이미 채무조정에 합의한 채권자들에게 상환해야 할 돈을 지급하지 못하게 했다.

사실상 벌처펀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벌처펀드 측에서 아르헨티나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고집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아르헨티나는 벌처펀드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이미 채무 조정에 합의한 93%의 채권자들에게도 같은 조건으로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악셀 키실로프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은 "그들이 300%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협상안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더 많이 당장 받기를 원했다"면서 '지나치게 탐욕적'이라고 비난했다.

호르헤 카피타니치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장은 미국의 토머스 그리사 판사와 협상을 중재한 대니얼 폴락은 헤지펀드의 대리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하면서 이번 문제를 국제재판소에 제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카피타니치 실장은 또 "유엔 총회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며 국제문제화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