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이힐’ 차승원, 누구나 비밀은 있다
[최송희 기자 / 사진 장문선 기자] 얼굴 때문에 잊고 있었다. 그가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은 중견배우라는 사실을.

한 시간가량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그가 베테랑이라는 것이다.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질문들도 가볍게 웃어넘기고, 어렵지 않게 화제를 돌려버린다. 그것은 곧 그가 보낸 20년이라는 시간의 힘이기도 하다.

최근 영화 ‘하이힐’(감독 장진) 개봉을 앞두고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만난 차승원은 ‘어른 남자’가 가지는 여유와 섹시함을 가지고 있었다. 구태여 보태지 않아도 충분한 어른 남자의 매력. 말하지 않아도 온몸에서 풍기는 ‘여유’는 시간이 준 선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긴 시간이었다.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 이후 영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드라마는 3년, 영화는 4년 만에 복귀한 그는 “중간에 연극도 했었는데…”라며 멋쩍게 웃는다.

“‘최고의 사랑’으로 소진을 많이 했었어요. 중간에 안 좋은 일도 있었고…. 드라마 촬영 초반에는 스트레스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근육이 뭉쳐 뒷목이 붓곤 했는데, 다행히 시청률이 잘 나와서 재밌게 찍고 있어요. 이제 곧 영화도 개봉하는데, 색감과 질감이 특이한 작품이라서요. 기대가 커요.”

외식하는 기분이 드는 작품. 차승원은 “매일 집 밥만 먹다가 근사한 곳에서 외식하는 기분”이라며 ‘하이힐’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는 관객이 가지는 기대감과도 다르지 않다.
[인터뷰] ‘하이힐’ 차승원, 누구나 비밀은 있다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춘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이 치명적 비밀을 감춘 채 새로운 삶을 위해 조직과 위험한 거래를 시도하는 내용을 담은 감성 느와르 ‘하이힐’은 장진 감독과 차승원의 세 번째 작품이자, 장진 감독의 첫 느와르 도전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하이힐’이 장진 감독 스타일은 아니죠. 촬영만 6~7개월 정도 걸렸고, 후반 작업은 1년 정도 걸렸어요. 포스터만 봐도 장진 감독 영화가 아닌 것 같잖아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없잖아. (웃음) 그런데 장진 감독도 이런 것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재기발랄할 나이는 지났잖아요.”

감독과 배우라기보다는 오랜 친구 같다. 차승원은 장진 감독에 대해 말할 때면, 고교 동창을 대하듯 눙치는 얼굴을 한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께 일하기란 어려운 법. 그는 “날 너무 잘 알아서 불편한” 상대인 장진 앞에서 “치부를 들키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장진 감독 앞에서 연기하고 있으면 발가벗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여기선 이런 연기 하겠지?’하고 내 수가 읽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재밌는 얘기도 그렇잖아요. 처음 이야기할 때는 리액션이 좋지만, 두세 번 할 때면 웃음의 강도가 약해진다고 할까. 그런 걸 못 견디겠어.”

차승원의 말마따나 색감과 질감이 특이한 작품이다. ‘하이힐’은 감성 느와르라는 다소 복합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안에 지닌 비밀스러운 소재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장진 감독은 제목에 대한 질문에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었다. 제목이 주는 의미는 작품 전반에 깔린 정체성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되고 싶은 강력계 형사의 이야기. 차승원은 “겁이 나서 세 번이나 거절했었다”고 말하면서도 “장진이라면 이 인물만큼은 잘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믿음을 드러냈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찍을 때였는데, 황정민 씨가 그런 이야길 한 적이 있어요. ‘승원 씨는 내게 없는 걸 갖고 있어요. 약간의 여성성이요’라고요. 그런 말을 들은 데다가 장진이 ‘이건 자기밖에 못 해’라고 말하니까. 해야 할 것 같잖아요.”

너무도 잘 아는 사이이기에, 누구나 ‘마초’라고 생각하는 차승원에게서 여성성을 발견한 것 아닐까? 차승원은 시나리오를 처음 접한 뒤 장진 감독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쭉 떠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본 당신이라면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장진 감독의 말을 믿기로 했다.
[인터뷰] ‘하이힐’ 차승원, 누구나 비밀은 있다
“영화 ‘뷰티풀 복서’를 참고 했어요. 태국 영화인데 남자 킥복싱 선수였다가 성전환 수술을 한 농툼의 실화를 담은 내용이에요. 그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다는 느낌을 전혀 못 느꼈어요. 특히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꼭 딸과 엄마 같은 느낌을 주는 거야. 그런 ‘느낌’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죠.”

‘느낌’이라는 것처럼 모호한 게 또 있을까. “그런 느낌이 뭘까요?” 차승원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런 거죠. 느낌”이라며 간단하다는 듯 자세를 잡는다.

“여기에 남자들만 있다고 생각해봐요. 다들 ‘야 이 자식아’라는 분위기에서 나만 혼자 ‘응. 그래서?’하고 이런 포즈로 얘기를 듣는 거. 그냥 ‘툭’치는 것들 있잖아요. 이런 게 느낌인 거죠.”

얌전히 턱을 괴고 조금은 나긋나긋한 눈길을 던지는 그. ‘이렇게’ ‘툭’ 등으로 설명되는 느낌들이 낯설 법도 하건만. 그의 ‘툭’과 ‘이렇게’에 홀랑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예전엔 남자다운 걸 과시하려고 했었어요. 다리를 벌리고 앉거나, 마초적인 자세 같은 걸로.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게 불편하고 유치하더라고요. 눈물이 많아지기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바뀌는 것 같아.”

누구나 이면에는 ‘생각과는 다른’ 얼굴이 숨어있다. 그저 유쾌하고, 강인할 것 같은 차승원 역시 그 이면 안에는 여리고, 약한 고민들이 숨어있었다. 이제 마흔 중반. 차승원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제껏 내가 해온 게 맞는 일인지” 고민한다며 이번 작품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장진 감독도 그럴 거예요. 정말 모든 걸 던져보자고 해서 찍게 된 거니까. 그런데 장진 감독은 워낙 사람이 좋아서…. 영화를 찍을 때 처음은 창대한데 끝은 미미해. 영화 스태프들이 오랜 기간 장진 감독과 함께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고생하는 걸 못 본다고 해야 하나. 그냥 타협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사람 좋은’ 장진 감독을 ‘독한 남자’로 만들었던 것 역시 차승원이었다. 그는 스트레이트하게 “이건 후진 것 같아”라고 독설 하기도 하고, 액션 신이 마음에 안 든다며 수십 차례 재촬영하기도 했다.

“만약 장진 감독이 다음 작품도 같이 하자고 하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할 거예요. 지금 같은 마음가짐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겠죠. 그런데 장진 감독이 나랑 안 한다고 할 것 같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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