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필요
'금융의 역사' 펴낸 구형건 한국금융공학회장 "역사적 배경 알아야 금융 현상 이해 쉬워"
한 만큼만 가장 적게, 대신 이를 어길 시에는 다시는 발을 못 붙일 정도로 강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만약 이랬다면 세월호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까요. 우리는 반대예요 규제는 너무 많고 처벌은 약하고. 금융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금융공학회장을 맡고 있는 구형건 아주대 경영대 금융공학과 교수(56·사진)는 6일 이렇게 말했다. 1980년 2월 서울대 자연계열 이공대 수석으로 입학한 구 교수는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수학박사,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포스텍을 거쳐 1999년부터 아주대에 재직 중이다.

구 교수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또 역사적 사실을 금융·경제적 시각과 접목해 강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예를 들면 ‘1차 세계대전 직전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이 전례 없이 통합됐다’라는 역사적 사실을 “영국, 프랑스, 독일이 군비각축을 벌이며 전 세계에 무기나 물자를 팔아먹기 위해 돈을 여기저기 빌려주다 보니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그는 “잘못된 파생상품 투자로 망해 1달러에 팔린 베어링은행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2009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WCU) 금융공학사업단을 이끌었다. 그 교수는 “수리적 연구만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풀지 못한다”며 “모든 현상은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노바, 토스카나, 암스테르담, 런던 등 역사적 금융 중심지를 직접 방문해 연구한 결과물인 ‘금융의 역사’라는 책을 올해 펴냈다.

증권업계 불황에 대해 구 교수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 업계에 증권·금융업을 잘 모르는 관료들이나 정치권에서 날아오는 ‘낙하산 거물’들도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는 “증권·금융산업은 인력 특성으로 볼 때 아주 소프트한 ‘두뇌산업’”이라며 “이쪽 분야를 잘 아는 분들이 조직을 리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지난달 중순 삼성그룹 사장단을 상대로 강의했다. 주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뒷이야기’, 부제는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였다. 그는 이날 WCU 사업차 만난 프랑스 수학·금융공학 분야 석학이자 유럽 과학계 거물인 알랭 벤수산 미 댈러스대 석좌교수와 나눈 얘기를 전해 관심을 끌었다. “이제 기업과 과학자의 관심은 우주입니다. 무한한 에너지는 태양에너지뿐인데 지구에서는 효율이 없어요. 스페이스셔틀 등으로 우주에서 직접 집광을 해서 보내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공상과학 같지만 벤수산 교수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저출산·고령화시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과학의 발전은 2차 세계대전 이전이 요즘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광범위합니다. 21세기가 이때와 가장 구분되는 부분은 인간 수명이 두 배로 늘었다는 점이에요. 정말 놀라운 변화인데, 이는 사회경제적인 모든 게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어요.”

수원=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