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한연선 씨의 ‘움직임-필터’. (전경련 신사옥), 정영훈 씨의 ‘형이상학적 그림’. (GS건설 신사옥), 김병호 씨의 ‘조용한 증식’. (국제금융센터)
사진 왼쪽부터 한연선 씨의 ‘움직임-필터’. (전경련 신사옥), 정영훈 씨의 ‘형이상학적 그림’. (GS건설 신사옥), 김병호 씨의 ‘조용한 증식’. (국제금융센터)
지난 3월 서울 청진동에 들어선 초대형 빌딩 GS건설 신사옥(연면적 17만5538㎡) 앞에는 별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대형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정영훈 작가가 만든 ‘형이상학적 그림-역사상의 스타’라는 조각품이다. 기하학적 선을 겹쳐놓은 듯한 이 작품은 청색 톤의 건물과 대비를 이뤄 멀리서 봐도 한눈에 띈다. 건물 뒤편에는 휴식을 상징하는 거대한 의자 모양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이곳에 근무하는 임직원과 행인의 쉼터가 돼 준다.

대형 건물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미술 장식품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설치된 미술 장식품의 새로운 경향은 건물 입주자의 ‘힐링’을 중시하고 조형물을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연면적 1만㎡ 이상의 건물 내부 혹은 외부에 건축비의 0.7%를 들여 설치해야 하는 미술 장식품은 그간 건물 입주자와 지역민의 정서함양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도시 미관을 해치는 ‘시각공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힐링’이 큰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사옥은 입주자의 힐링을 겨냥한 대표적인 예. 건물 일체형 태양광발전설비(BIPV)로 시공돼 국토교통부로부터 친환경 1등급 빌딩으로 인증받아 화제를 모으기도 한 이 건물에는 회화 조각 미디어 등 모두 아홉 점의 미술 장식품이 설치됐다.

3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로비층에는 두 점의 LED(발광다이오드) 활용 작품이 설치됐다. 김병진의 ‘골드-풀’은 달의 차고 이지러짐을 빛을 조절해 표현한 가변 작품으로 밤에도 빛을 뿜어내 인공 달의 정취를 선사한다. 또 태양을 묘사한 홍성철 씨의 평면 작품 ‘지각하는 거울-명멸광’은 일조량에 따라 색채가 변화해 친환경적 건물 콘셉트와 일치한다.
서울 상암동 DMC 디지털큐브에 설치된 이왈종 화백의 ‘생활의 중도’.
서울 상암동 DMC 디지털큐브에 설치된 이왈종 화백의 ‘생활의 중도’.
지난 3월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문을 연 디지털큐브(연면적 7만144㎡)에도 힐링을 겨냥한 회화 2점과 입체 조형물 1점이 설치됐다. 로비층의 다목적 공연무대 왼쪽 벽에는 탐스러운 사과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서양화가 윤병락 씨의 유화 ‘가을 향기’가 걸려 도심 속에서 자연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같은 로비층 중앙에 설치된 한국화가 이왈종 씨의 회화 ‘생활의 중도(中道)’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세계를 밝은 색채로 묘사해 건물 내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힐링과 함께 떠오르는 또 하나의 흐름은 미술 장식품을 빌딩 인지도 및 회사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최근 완공한 서울 상일동 한국종합기술 사옥 앞에는 기술의 진보를 상징하는 높이 6.1m의 스테인리스 수레바퀴가 세워졌고 서울 가산동 마리오아울렛 앞에는 높이 5.5m인 대형 티셔츠 형상 조각(신치현 작)이 세워져 업체의 브랜드를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도시 주거환경의 황폐화에 따른 역기능과 예술의 마케팅 효과에 눈뜬 결과”라며 “다만 미술 장식품 설치를 건물 입주자만이 아닌 지역민을 함께 배려하는 공공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