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 없는 순수 엔지니어에 '기술 도약' 기대한 듯
'필드 출신' 아니지만 네 명 연속 '내부 전통' 이어가


포스코가 16일 차기 회장에 권오준(64) 포스코 사장(기술부문장)을 내정함에 따라 김만제 전 회장 이후 네 명 연속 내부인사에게 총수 자리를 맡기게 됐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출신의 김 전 회장을 제외하면 전원 '포철맨' 출신이라는 전통을 이어간 것이다.

그러나 업계 주변에서는 포항·광양제철소장 등 주요 포스트의 현장 경험이나 경영·재무 핵심 라인에 거의 근접하지 않았던 순수 CTO(최고기술책임자)인 권 사장의 CEO 기용을 의외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장 소장도 해보지 않은 엔지니어 출신이 매머드 철강 기업의 회장직에 오를 수 있느냐'는 시각의 이면에는 '지금껏 구현되지 않은 기술적 도약'에 방점을 찍으려는 '미래의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정치바람 타지 않은 인물…"'드림팀' 경영진 필요"
포스코 CEO 후보 내정 소식이 전해 들은 포스코 고위 임원 출신의 한 인사는 "일종의 모험이지만 색다른 시도 아니겠느냐"라고 운을 뗐다.

이 인사는 "권 사장은 CTO로서 그동안 대외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회장으로 낙점될 것으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포스코의) 내외부에 뭔가 변화를 줘야 한다면 이런 분을 내세울 법도 한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특히 포스코가 민영화 이후 줄곧 경영실적이 좋지 못했다는 점이 안팎에서 변화 요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인사는 "포스코가 경영실적이 좋다면 과거처럼 필드 출신 철강맨이 적임자일 수 있겠지만, 미래에는 분명히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포스코의 미래 사업영역을 유추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며 권 사장의 CEO 후보 내정을 풀이했다.

이 관계자는 "포스코를 오로지 철강기업으로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종합소재기업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면서 "포스코의 미래를 철강이 아니라 첨단 소재부문에서 찾는다면 권 사장 같은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적합하다"고 말했다.

포스코 실적에서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줄어들고 소재·에너지 분야가 30∼40%로 올라오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분석인 셈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준양 회장이 향후에도 뭔가 영향력을 미치려는 의도가 내재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에는 일제히 선을 그었다.

업계의 한 인사는 "정 회장과 권 내정자가 서울사대부고, 서울대 금속공학과 선후배 사이라는 건 정말 우연한 관계일 뿐"이라면서 "정 회장이 매끄럽게 경영권을 넘기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그건 정말 억측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권 사장이 CEO로서 안착하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최적의 전열을 갖춘 '드림팀'을 꾸려야 할 것이라는 주문도 나온다.

자신이 정치적 바람을 타고 온 CEO가 아닌 만큼 기술 외적인 분야에서 닥쳐올 험난한 과제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참모 라인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 역대 회장 7명 중 6명 '내부출신'
포스코에는 고 박태준 창업주부터 현 정준양 회장까지 모두 7명의 CEO가 있었다.

황경로 전 회장(1992년 10월∼1993년 3월 재임)은 포항제철 관리부장 출신이고, 정명식 전 회장(1993년 3월∼1994년 3월 재임)도 포항제철 토건부장 출신이다.

유상부 전 회장(1998년 3월∼2003년 초 재임)은 잠시 삼성중공업 사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포항종합제철에 입사해 20년 넘게 현장을 지키며 임원에 오른 '포철맨'이다.

2000년 민영화 이후 CEO에 오른 이구택 전 회장(2003년 3월∼2009년 2월 재임)도 1969년 포철에 들어와 열연기술과장·수출부장 등을 지내며 포스코에서 한우물을 팠다.

정 회장 역시 1975년 포철에 입사해 광양제철소장 등을 거친 정통 포스코맨으로 분류된다.

이날 임시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차기 CEO 후보인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된 권 사장은 1986년 포철 입사 이후 기술연구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을 거쳐 2012년부터 기술부문장을 맡고 있다.

김만제 전 회장 만이 5공 시절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관료 출신으로 유일하게 외부에서 영입된 CEO다.

사실 이번 CEO 내정 절차를 앞두고도 외부 인사가 영입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있었다.

정 회장이 지난해 11월 15일 이영선 이사회 의장에게 사의를 표명했을 무렵 정치권을 중심으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원길 전 의원, 진념 전 부총리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또 CEO 추천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는 오영호 코트라 사장, 양승석 현대자동차 고문, 손욱 전 농심 회장 등이 거론됐고 오 사장은 5명의 최종 후보군에 들어가기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수가 중도하차하는 사태가 반복된 점도 포스코가 외풍에 영향을 받는다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결국 권 사장이 최종 낙점을 받음으로써 항간의 관측을 무색하게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외압에 쉽게 휘둘리기 쉬운 지배구조의 단점을 불식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한다"며 "CEO 승계협의회·추천위원회 등의 절차가 제대로 작동함으로써 해외주주 등에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옥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