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聖女)의 귀환.’

라이벌 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3기 내각이 15일(현지시간) 발표되자 독일 언론들은 이같이 묘사했다. 여성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전 노동부 장관이 내각 2인자 격인 국방장관에 임명된 것을 지칭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와 함께 유럽중앙은행(ECB)의 대표적 비둘기파(통화정책 확대 및 양적완화 지지론자) 집행위원인 외르그 아스무센을 노동부 차관으로 불러들였다. ECB 내 비둘기파들이 힘을 잃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009년 가정장관 시절 폰데어라이엔의 별명은 ‘성녀’였다. 그는 당시 출산 장려를 위해 육아휴직을 쓴 여성에게 임금의 67%를 보조하는 정책을 추진하며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일곱 자녀의 어머니인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재계 반대에도 “출산이 늘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며 도입을 밀어붙였다. 그의 남편은 아내를 대신해 가사를 책임지고 있다. 정치 입문 전에는 산부인과 전문의였고 벨기에와 영국, 미국 거주 경험이 있어 영어와 불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는 최저임금제 등을 놓고 메르켈 총리와 정면 충돌하기도 했다.

다만 군 경험이 전혀 없어 아프가니스탄 파병 논란 등 산적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실험적인 인사지만, 그게 전부”라고 평했다. 슈피겔은 “메르켈이 자신을 이을 차기 ‘프린세스’를 세운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독이 든 성배’인 국방장관 업무를 잘 수행하면 2015년이나 2016년 총리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메르켈 총리가 내각 장관 시절 헬무트 콜 전 총리의 16년 집권을 강하게 비판했던 만큼 임기 10년째인 내후년 자진 사퇴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아스무센이 노동부 차관으로 임명되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 독일 외교차관 출신인 아스무센은 그간 ECB 내에서 단기국채무제한매입(OMT) 등 양적완화 정책을 지지하며 대표적인 비둘기파로 분류됐다. 특히 강성 ‘매파’ 집행위원인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를 견제하며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에게 힘을 실어줬다. 아스무센이 ECB에서 빠지면서 드라기 총재는 든든한 우군을 잃었다는 평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아스무센이 빠진 자리에는 매파인 사비네 라우텐슐레거 분데스방크 부총재가 내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메르켈 3기 내각의 재무장관으로는 역시 강경 긴축론자인 볼프강 쇼이블레의 연임이 확정됐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