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산업단지 재도약, 클러스터에 답 있다
지금부터 10여년 전인 2002년,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모여서 ‘MAIDO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린다는 구상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도대체 종업원 수십명의 중소기업들이 모여서 무슨 인공위성을 쏘아올린다는 것인가. 인공위성은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아닌가. 그로부터 7년 뒤인 2009년 세계 각국의 언론은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어떻게 중소기업들이 이런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프로젝트에선 ‘산업클러스터’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산업클러스터는 연관이 있는 산업의 기업과 기관들이 한 곳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꾀하는 산업집적단지를 말한다. 대학과 연구소, 기업, 기관 등이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곳으로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이다.

MAIDO 프로젝트에는 오사카 동쪽에 있는 히가시 오사카의 중소기업들이 참여했다. 소재, 부품, 전기, 전자, 컨트롤 분야의 업체들과 쇠를 깎는 금속가공업체 등 10여개사가 참가했다. 중요한 것은 도쿄대와 오사카대가 전체 로드맵을 짜줬다는 점이다. 개별 기업은 자기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융합프로젝트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역할을 해주는 기관이 필요하다.

현대는 융합의 시대다. 혁신의 상징인 아이폰도 여러 가지 기능의 융합제품이다. 융합을 위해선 클러스터 활동이 활발해져야 한다. 기업, 연구소, 대학, 지원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제품, 창조적인 비즈니스를 창출해 내야 한다. 핀란드의 에스푸, 스웨덴의 시스타 등이 모범 사례로 꼽힌다. 유럽의 강대국 독일도 수년 전부터 클러스터를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클러스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전의 산업단지는 기업들의 물리적인 단순 집적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단지 내 기업 간의 협업을 이끌어 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IT클러스터, 구미 전기전자클러스터, 창원 기계클러스터, 광주 광산업클러스터, 원주 의료기기클러스터 등 단지별로 특화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산·학·연 혁신네트워크인 미니클러스터가 산업단지 중심으로 70여개가 구축돼, 기업 대학 연구소 유관기관 등 산·학·연 종사자 7200여명이 활동 중이다.

이런 노력은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미니클러스터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의 생산, 수출, 고용 성과가 참여하지 않는 기업에 비해 2~6배가량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미니클러스터 사업은 중소기업 간 지식과 정보공유를 통한 동반성장을 촉진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기업애로 해결형 연구개발(R&D) 과제의 대부분이 기업 간 컨소시엄에 지원되고 있으며, 지원대상도 종업원 5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전체의 3분의 2가량이다. 이처럼 지금 산업단지는 지식과 정보, 창조와 혁신이 선순환되는 혁신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역 단위 클러스터를 수직·수평으로 연결하는 전국 단위의 테마클러스터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단지가 내년이면 출범 50주년을 맞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단지는 한국 경제와 희로애락을 같이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이제는 우리 민족 고유의 협력 유전자를 적극 활용할 때다. 두레며 품앗이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왔던 선조들의 지혜를 산업단지에 이식하는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의 힘과 지혜로 지금의 회색빛 산업단지가 다채로운 창의와 혁신의 공간으로 바뀌는 날도 머지않았다.

강남훈 <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