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사진·동영상 왕재산 때 법정서 증거 채택
`北영화 시청' 이적행위 목적 인정 여부 주목


지난 2011년 적발된 조직 '왕재산'은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인 노동당 산하 225국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설립된 간첩단이다.

이들은 북한 공작원에게 국내 정치동향을 전달하고 이적표현물 등을 소지·배포한 혐의 등이 인정돼 지난 7월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공안당국 안팎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수사 중인 '이석기·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이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구글의 지메일을 사용해 북측 또는 해외 접선책과 연락을 주고받은 점, 북한 영화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점 등에서 왕재산과 이석기 의원이 이끈 'RO(Revolution Organization)' 조직의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 등 RO 핵심 지도부에게는 형법상 내란음모 등 혐의가 적용됐고, 왕재산 구성원들은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기소됐다가 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북한 영화 시청' 체제위협 표현물인지가 중요
왕재산과 RO 조직의 유사점 중 하나는 북한 영화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 의원의 체포동의요구서에 따르면 진보당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지난 4월 개최한 세포결의대회에서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북한 영화 '월미도'를 시청했다.

'월미도'는 북한의 대표적인 전쟁영화로 1950년 9월 북한 해안포병대원들이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을 갖고 한국군과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맞서 월미도를 사수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무용담을 그리고 있다.

왕재산 구성원들은 주거지에 북한 영화 '조선의 별'과 텔레비전 연속극 '왕재산 1편' 등을 CD 형태로 소지했다가 공안당국에 적발됐다.

'조선의 별'은 항일혁명투쟁 등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민족 우상으로 미화·찬양하고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상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소지 목적과 함께 해당 표현물이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학술연구 등의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면 국보법 위반을 적용하기 어렵다.

북한에서 제작된 영화나 음악 등을 단순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법원은 왕재산 구성원들이 소지했던 영화 CD 등이 "'표현의 자유' 한계를 넘어선 것들로 대한민국의 존립 등을 위협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뒤 "이들이 북한과의 연계 활동을 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이적행위 목적도 충분히 인정된다"며 유죄 판결했다.

따라서 RO 조직원들이 북한 영화 시청 및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로 처벌될지 여부는 해당 영화나 표현물의 내용, 입수 및 활용 경위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지메일 암호화 프로그램 활용' 유사
5일 공안당국에 따르면 RO와 왕재산 조직원 중 일부는 공안당국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서버를 둔 구글의 지메일 계정을 활용했다.

지메일은 계정 가입 시 개인 인적사항을 입력할 필요가 없고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다.

이를 이용한 것은 수사당국의 압수수색 및 추적이 어려운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RO 조직원들은 이메일과 USB 등 전자장치 이용 시 암호화프로그램을 사용했는데, 이 역시 북한 공작조직의 암호화프로그램을 사용한 왕재산과 유사한 점이다.

그러나 설령 RO 조직원들이 북한 측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는 현 단계에서 예측하기 쉽지 않다.

대법원 판결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등의 방법으로 연락하고 그 행위가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을 때' 국가보안법 8조 1항에서 정한 통신·회합의 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실제 대법원은 왕재산 조직원들이 북측 인사와 주고받은 이메일에 대해 "문건들이 대한민국의 경제·군사·외교 등에 관련된 자료라고 볼 수 없고, 이를 주고받은 행위가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국정원 몰카' 증거 인정될까?…'왕재산' 때는 O.K.
국정원은 지난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모임에 참석한 RO 조직원 130여명 가운데 90여명의 신원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내부 제보자 등을 통해 2차 회합 일시와 장소를 사전에 인지, 수사회 강당을 오가는 참석자들을 외부에서 '몰래 카메라'로 촬영했다.

국정원은 제보자가 건넨 회합 녹취록과 함께 참석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증거를 토대로 이들이 함께 내란 음모를 꾀하고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공안당국은 녹취록에 등장하는 이 의원 등 진보당 간부들은 물론이고 몰카 사진에 노출된 일반 당원들도 수사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왕재산 사건 재판에서도 검찰은 조직원들이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 북한 공작조와 접선한 장면을 찍은 사진·동영상 파일을 주요 증거로 내세웠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자 피고인들은 해당 사진과 동영상은 위법수집 증거라며 항소했다.

이들은 "동의없이 촬영해 초상권을 침해한 데다 우리 수사당국의 관할지역이 아닌 곳에서 영장 없이 촬영이 이뤄져 영장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누구나 자기의 얼굴이나 모습을 함부로 촬영 당하지 않을 자유를 갖지만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제한이 가능하다"면서 "호텔 프런트 등 공개된 장소에서 촬영한 데다 증거보전의 필요성이나 긴급성이 있어 영장 없는 촬영이라 하더라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왕재산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내란음모 사건 관련 국정원의 '몰카 사진'은 정당하게 수집한 증거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고상민 기자 pdhis959@yna.co.krgoriou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