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늙어간다] 생산직 고령화 늪에 빠진 日…40~50대 월급 낮춰 60대에 충당
일본 조선업체인 가와사키중공업은 1997년 퇴직자를 재고용하기 위한 ‘시니어 사원제도’를 도입했다. 60세 정년을 맞은 베테랑 생산직 근로자를 회사에 계속 붙들어 두기 위한 제도다.

시니어 사원으로 재입사한 고령 직원들은 현장 업무와 함께 후배 사원에 대한 교육도 담당한다. 극심한 저출산·고령화로 산업현장에 젊은 피가 줄어든 것이 이 제도의 도입 배경이다. 고령 노동자들이 퇴직해 버리면 산업현장을 지탱하던 노하우와 경험이 한꺼번에 사라질 정도로 직원들의 연령 구조가 취약한 탓이다. 은퇴자들의 해외 취업으로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조선업 이외 다른 산업현장도 고령화하긴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 제조업을 포함한 비농림업 취업자 가운데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1.4%에서 작년엔 17.4%로 높아졌다. 사상 최고 수준이다. 반면 30세 미만의 젊은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23.5%에서 17.1%로 줄어들었다. ‘60세 이상’과 ‘30세 미만’의 비중이 처음으로 역전됐다.

종신 고용제로 인한 생산직 고령화를 막지 못한 일본은 뾰족한 대안 없이 중장년층을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 핵심은 고령화용 임금 체계를 새롭게 만드는 것. 60세 이상 근로자들의 임금을 종전보다 높이고 그 이하 직원들의 봉급은 전체적으로 하향 조정하는 방식이다.

회사 형편에 따라 임금 체계 개편은 제각각이다. 산토리홀딩스와 다이와하우스 등 일부 기업은 특별한 임금 삭감 없이 근로자 전원의 정년을 65세로 높인 반면 NTT그룹은 40, 50대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해 60세 이상의 인건비로 충당키로 했다.

정년을 근로자 개인이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 중공업회사인 IHI그룹이 대표적. 이 회사는 59세 사원들이 60~65세 사이의 정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정년제’를 지난 4월부터 시행 중이다. 선택한 정년까지는 풀타임 근무가 보장된다.

일본 정부도 정년 연장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5세로 높이면서 이른바 ‘은퇴 크레바스’로 불리는 고령층의 소득 공백기를 메우기 위해 근로자들의 정년을 지난 4월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했다. 희망자 전원을 65세까지 고용하지 않는 기업은 회사 이름이 공개되고, 경우에 따라선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 등 제재 조치가 취해진다.

하지만 일본 산업계는 이 같은 고령층 활용으로 산업체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자동화 혹은 업종 전환 등을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찾지 못하면 강한 제조업 체질 유지가 어려울 것이란 인식이 여전하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