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모금·관리에 개입…여전히 함구하며 '충정' 과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기 사람들'을 유독 아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씨는 세력을 모으려고 측근들을 집으로 불러 거액을 건네기도 했으며 여전히 각종 모임을 주관하는 등 정기적으로 회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관리하던 이들은 전씨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고 과거 전씨의 내란죄와 뇌물죄를 수사하던 검찰은 이 때문에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측근들을 동원해 수백개의 계좌에 쪼개 넣어 보관했던 전씨의 비자금을 캐려면 측근의 진술이 꼭 필요했지만 이들은 입을 여는데 매우 인색했다.

이는 비자금 계좌의 수가 비교적 적고 측근이 '자진해서' 나와 검찰 수사를 받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례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검찰 '전두환 추징금 특별 환수팀'이 다시 꾸려진 가운데 과거 비자금을 모으고 관리했던 인물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씨의 집을 다시 찾으며 대응책을 모색하는 등 변함없는 충성을 보이고 있다.

◇ 비자금 형성·관리에 측근들이 '일꾼'
전씨가 '정치자금' 혹은 '통치자금'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에는 많은 측근들이 조력자로 나섰다.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전씨를 33년 이상 지근거리에서 인연을 맺어온 손삼수(61)씨다.

전씨가 보안사령관일 때 전속부관으로 인연을 맺은 손씨는 전씨의 대통령 재임시 청와대 재무관 등을 지내며 비자금 관리를 맡았고 퇴임 후에도 비서관 및 개인 비서 등으로 업무를 계속했다.

1996년 4월 열린 전씨의 비자금 공판에서 손씨가 전씨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전씨의 지시로 실명제 실시 이후인 1993년 10월 중순께 장모, 형, 형수, 형의 장모, 외가 친척 등의 이름으로 14억원 상당의 산업금융채권을 실명화해 현금 21억원을 전씨에게 건넸다.

1995년 3월 손씨는 앞서 매입한 5년 만기 장기신용은행 채권 10억원을 만기에 매도, 16억원을 받아 이를 다시 국민주택채권 액면 15억원짜리를 10억원에 매입하고 나머지 6억원은 1만원권 현금으로 만들어 전씨에게 줬다.

2004년 전씨의 아들 재용씨의 세금 포탈 수사 당시에도 손씨는 수사 선상에 올랐다.

당시 검찰에 따르면 손씨와 장해석, 김철기씨 등 '전두환 금고지기'로 알려진 3명이 자신의 계좌에 각각 25억, 41억, 40억원을 입금해두고 연희동 사저수리비, 연하장 인쇄비, 변호사 선임비 등으로 사용하는 등 조직적으로 관리했다.

이들이 관리했던 전씨의 돈은 106억원에 이른다.

장씨와 김씨는 2003년 10월 전씨의 비자금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출국,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5공화국 당시 청와대 재무관으로 일했다는 사실 외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다.

'모금활동'에 직접 관여한 인물은 전 국세청장 성용욱(77)씨와 전 안기부장 안무혁(78)씨다.

이들은 법원에서 뇌물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공소장과 재판기록에 따르면 전씨는 1987년 10월 당시 안기부장 안씨를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국세청장과 함께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라고 지시했다.

세금징수와 세무조사 권한을 가진 국세청장 성씨는 안씨와 함께 대상 기업을 골라 같은 해 10∼12월 기업 대표들을 사무실로 줄줄이 불렀다.

기업 대표들은 "대통령의 지시로 세무조사를 위한 내사를 진행 중"이라는 압박에 대선 자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13대 대선을 앞두고 걷은 자금은 114억여원에 이른다.

이 밖에도 전씨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안현태 전 경호실장 등이 비자금 조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비자금 가운데 30억원과 10억원을 용돈으로 받았다고 알려졌다.

안씨는 2011년 숨져 현재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으며 전씨의 심복 장씨는 비자금의 행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사업가·연구원 이사장 등으로 변신…계속되는 '충성과 복종'
전씨의 측근들은 전씨가 퇴임하고 나서도 그의 일가와 인연을 이어왔다.

2000년 5월 검찰은 추징금 징수시효를 연장하기 위해 1987년식 벤츠 승용차를 강제집행했다.

낙찰가는 9천900만원. 감정가 1천500만원보다 6배 이상 비싸게 주고 가져간 사람은 전 비서관이었던 손삼수씨였다.

그는 1995년 검찰 수사 당시 진술조서에 "문민 독재 물러나라. 정치탄압 중단하라"고 쓰고 묵비권으로 버텼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사관들 사이에 '제2의 장세동'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는 20여년 전부터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1994년 전자회사를 설립, PC와 모니터 사업을 시작했으며 1998년 IMF를 계기로 데이터베이스(DB) 분야로 사업모델을 바꿨다.

현재는 한 인터넷보안업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전씨 일가와 교류를 계속해온 손씨는 2003년에는 전재용씨가 운영하던 업체 '오알 솔루션즈 코리아'를 인수하기도 했다.

검찰이 전씨의 괴자금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하기 직전이었다.

그는 사업과 관련해서는 최근까지도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한국DB산업협의회 회장을 맡는 등 거침없이 활동하고 있지만 '과거사'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는 지난 22일 상암동에 있는 그의 회사로 찾아갔지만 그는 "민정기 전 비서관이 (이 사안과 관련해) 공식적인 답변을 맡고 있다"며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아주 오래전 일인데, 좋지 않은 일로 회사 이름이 언급되는 일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신다"고 전했다.

안기부장을 지내며 비자금 모금을 주도했던 안무혁씨는 한국발전연구원(한발연) 이사장과 황해도중앙도민회 회장을 맡고 있다.

보수성향의 연구기관 한발연은 1990년 안씨의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학술회의, 강연 등을 개최했다.

70∼80대 퇴역한 정·관계, 경제계 인사들 1천여명이 회원으로 있으나 한발연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지난 3월부터 공식적으로 활동을 중지했다.

한발연은 연구원 없이 직원 2명만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과거 안씨와 함께 활동하던 지인들이 찾는 '사랑방'과 같은 구실을 하는 수준이다.

안씨는 인터뷰 요청에 "연구원은 '휴면상태'로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럴 때는 잠자코 기다리면 될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씨가 '공식창구'로 언급한 민정기 전 비서관은 현재 전씨를 대신해 언론 대응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민씨는 청와대 재무관을 지냈으며 중앙일보, 동양통신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외부에서 '측근'으로 분류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경조사에서 마주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다"라며 "연희동과 접촉 여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비자금과 관련해 다시 측근들이 거론되는 데 대해 "세월이 많이 흘러서 각자 활동하고 있다"며 "검찰에서 법을 집행하는데 기다리면 되지, 다른 사람이 나선다고 해결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noma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