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상속세제 가업승계 발목"
국내에서 가업 승계가 어려운 게 높은 상속세율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세율 외에도 가업 상속과 관련한 다른 세제가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8일 ‘주요국의 가업 상속 세제의 내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다른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가업 상속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고 밝혔다.

한경연이 원활한 가업 상속을 막는 대표적인 장애물로 꼽은 것은 상속인과 피상속인 요건이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서는 요건 충족 여부가 아니라 가업 유지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세제 지원을 한다. 가령 상속인은 상속 개시일 2년 전부터 가업에 종사해야 하고, 상속세 신고기한 2년 내 대표이사로 취임해야 한다. 또 피상속인도 가업 경영 기간 중 60% 이상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상속개시일로부터 소급해 10년 중 8년 이상은 대표로 일해야 한다.

한경연은 가업 상속 때 세제 지원을 받는 기업 규모를 제약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독일에서는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가업 상속이면 혜택을 받지만 한국에서는 중소기업과 연매출 2000억원 이하 중견기업으로만 엄격히 한정했다.

영국과 독일은 상속세를 덜 낼 수 있는 상속재산 공제에 한도를 따로 두고 있지 않은 데 비해 한국은 한도를 최대 300억원으로 정한 점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들었다. 국내에선 상속 후에도 회사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하지 않아야 하고 상속인 지분이 감소하지 않아야만 상속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점도 과도한 규제로 지적했다.

한경연은 “정부가 가업 상속 세제 개선을 140대 국정과제로 제시한 만큼 독일 사례를 적극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가업 상속 후 고용 요건만 지키면 지원토록 규정하고 있을 뿐 상속 가능한 기업 규모나 공제 한도에는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고 있다. 독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한국과 같은 50%지만 배우자나 자녀 등이 가업을 이어받으면 상속세율을 30%로 우대해준다.

독일은 상속재산 공제 혜택도 크다. 사업 승계 후 가업을 5년간 유지하면 상속 재산의 85%를, 7년간 유지하면 100%를 각각 공제해준다. 공제금액 상한이 없으며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도 가업 상속 때 세제 혜택을 준다. 다만 승계한 기업에 다니는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급여 총액을 깎지 않아야 한다.

정승영 한경연 연구원은 “가업 상속이 원활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독일처럼 상속 가능한 기업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적격 상속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전액 공제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