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기업인 대화연료펌프 직원들이 개성공단에서 생산하기로 했던 제품을 대신 만들기 위해 주말인 지난 22일 인천시 송도경제자유구역 내 본사 공장에서 12시간 맞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송도=은정진 기자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대화연료펌프 직원들이 개성공단에서 생산하기로 했던 제품을 대신 만들기 위해 주말인 지난 22일 인천시 송도경제자유구역 내 본사 공장에서 12시간 맞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송도=은정진 기자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알루미늄 아연부품 제조회사인 동양다이캐스팅의 오경택 사장은 매일 밤 12시까지 직원들과 함께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을 지킨다. 거래처에서 발주한 물량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개성에서 기초 작업을 한 부품을 본사 공장으로 들여와 마무리하는 가공을 해왔다. 지난 4월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 80일이 넘도록 공장 가동을 하지 못하면서 모든 작업을 본사에서 처리하고 있다.

이 회사의 인천 공장은 각종 자재와 중간 가공품이 가득 차 있다. 오 사장은 “본사에서 생산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며 “발주기업의 주문을 수월하게 맞추기 위해 국내에 금형공장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업체 주문 끊겨 고통 가중

[개성공단 중단 83일] 입주기업, 거래처 30% 끊겨…미얀마·베트남 등 이전 고심
개성공단이 지난 4월3일 폐쇄된 지 83일이 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23일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123개 기업 중 대부분이 장기간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생산 차질, 거래업체들의 대금 지급 지연, 거래 중단 요구, 직원 이탈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주기업들은 개성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생산 차질을 메우기 위해 직원들에게 특근을 시켜가며 국내 공장 등을 풀가동하고 있지만 거래업체와 약속한 납품 기한을 제때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거래해온 업체들의 평균 20~30% 정도가 거래를 이미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섬유업체는 “거래업체 중 한 곳은 납기일을 맞추지 못한 책임을 물어 기존 결제대금까지 주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우리가 협력업체에 내줘야 할 돈을 주지 못해 가압류가 들어온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거래 중단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한결같이 “회사 이름을 거론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개성공단 대체지 모색

물론 모든 거래업체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과의 거래를 끊은 것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나서 도와주겠다는 곳들도 있다.

개성에 70억원어치의 금형설비를 두고 온 동양다이캐스팅은 거래기업들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다. 개성에 두고 온 금형을 다시 만들 수 있도록 결제대금 일부를 먼저 지급하는 거래업체도 있고, 완제품 납기를 늦춰주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오경택 동양다이캐스팅 사장은 “거래 업체의 20% 정도가 어려운 사정을 듣고 도와줬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장기화되자 입주기업들의 절반 이상은 해외 공장을 찾거나 임가공을 위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은행 일성레포츠 회장은 “개성공장을 대체할 공장을 찾기 위해 지난주 미얀마를 다녀왔지만 인건비가 개성공단보다 비싸고 시설과 기술은 떨어진다”며 “세법도 많이 바뀌어 투자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족한 정부 지원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해 지원하는 1630억원의 긴급자금(연이자 2%대)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정도’라는 게 입주기업들의 비판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의류업체 대표는 “긴급 대출자금 중 630억원만 신용도에 관계없이 빌릴 수 있는 돈”이라며 “나머지 1000억원은 신용등급이 B 이상이어야 빌려주는 데다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마저도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대출 자금이라 마음 놓고 쓸 수도 없다는 것이다.

유창근 개성공단 정상화촉구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은 “개성공단 중단 이후 많은 입주기업의 신용평가 등급이 떨어졌다”며 “630억원 대출자금도 123개로 나누면 업체당 평균 5억원 정도”라며 “신용도가 낮은 회사는 아예 못 타거나 2억~3억원 정도의 생색내기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입주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경협보험금 지급을 신청하는 곳도 늘어났다. 개성공단기업협회와 한국수출입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입주기업 65개사가 1946억원의 경협보험금 지급을 신청했다. 정부가 지급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난 8일 이후 2주 만에 경협보험 가입 입주기업(96개)의 68%가 보험금을 달라고 손을 내민 것이다.

기업들이 경협보험금을 받게 되면 공단에 있는 자산소유권을 넘겨줘야 한다. 정부는 정상화에 대비해 입주기업에 자산 우선매수청구권을 인정해줄 방침이지만 심한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로서는 이를 행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 대변인은 “경협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들은 보험금조차 받지 못한다”며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대출자금이 아닌 주요 설비나 원부자재 구입을 위해 필요한 특별자금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