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임금피크제 정년연장 대안될 수 있나"
기업들의 ‘정년 연장 쇼크’를 완화할 대안으로 임금피크제가 거론되지만 ‘임금피크제가 만병통치약이 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노조 입김이 강한 사업장에선 임금피크제 없이 정년 연장만 관철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임금피크제 규정을 도입한 기업에서조차 이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는 비율이 낮아 임금피크제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23일 ‘정년 60세 연장법’을 통과시키면서 ‘임금 체계 개편 등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임금 체계 개편의 대표적 방안인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임금피크제 없이 정년을 연장한다’고 노사 합의를 하면 이 조항은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교섭력이 강한 노조가 버티고 있는 사업장에선 임금피크제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산업계 관측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임금피크제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점은 향후 사업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용률이 낮아 임금피크제가 제대로 정착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11년 말 기준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이 8곳 중 1곳에 이를 정도로 매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기업은 늘고 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를 확실히 정착시킨 사업장은 드물다. 제도는 있는데 이용자가 적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10여개 은행이 58세 정년을 60세로 늘리는 대신 마지막 5년간 임금을 통상 임금보다 30~70% 적게 받는 임금피크제를 운용하고 있다. 우리은행에선 해마다 200~250명이 임금피크제 대상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는 사람은 대상자의 절반 이하다.

대체로 복리후생으로 얻을 혜택이 많으면 임금피크제를, 아니면 퇴직을 선택하겠다는 식이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직원들에게 마땅한 일이 주어지지 않다 보니 ‘일자리’에 의미를 두고 임금피크제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은행처럼 임금피크제 폐지를 검토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무직이 많은 곳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사무직 근로자는 대부분 본인보다 후배인 관리자에게 업무 지시를 받기 때문이다.

고준기 동아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는 “임금피크제가 시행되면 생산직 근로자는 직무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무직은 자리를 옮겨야 한다”며 “선배인 그들이 후배 밑에서 허드렛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이유로 사무직이 대부분인 한국농어촌공사는 2005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가 3년 만인 2008년 폐지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국 조직 문화에서 과거에 자기가 모시던 상관을 부하로 데리고 일하는 게 쉽지 않아 화이트칼라가 많은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상은/박신영/양병훈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