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줄소송] 정부, 대책마련 착수…법제화 안되면 투자·일자리 확대 '물거품'
한국경제신문이 통상임금 줄소송 사태를 집중 보도하면서 청와대와 정부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에서 전체 상황을 파악해 대응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개별 소송들이 많아 일괄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단 고용부가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한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계 “엎친 데 덮친 격”

핵심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애매하게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를 명확히 하는 것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토록 해놓은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법령화하는 것이다. 산업부와 경제계는 산업현장의 혼란을 막고 기업들의 과도한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완전히 빼는 방안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똑같은 내용의 지침을 운영하고 있는 고용부도 이런 방향의 법제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지만 노동계의 집단 반발과 야당의 반발 가능성 등을 우려해 말을 아끼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법제화가 차일피일 미뤄질 경우 산업계의 경영 불확실성이 더욱 고조되고 정부의 일자리 확대정책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더욱이 새 정부 들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징벌적 제재 확대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세무조사가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통상임금 줄소송이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완전히 탈진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인건비 일시에 2% 상승

지난해 3월 대법원 판례대로 통상임금의 범위에 상여금이 포함될 경우 지난 20여년간 산업현장을 떠받쳐왔던 임금체계는 송두리째 무너질 수밖에 없다. 휴일근무수당, 야근수당, 연월차 수당, 퇴직금 등의 급여가 연쇄적으로 올라 모든 기업들의 인건비 출발선 자체가 상향 이동하게 된다.

경총 분석에 따르면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포함해 통상임금을 다시 계산할 경우 기업들은 근로자에게 연간 8조8600억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지난해 국내 근로자 1739만7000명이 받은 총 임금이 433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통상임금 범위를 바꾸는 것만으로 전체 평균 인건비를 2.04% 끌어올리는 결과가 된다는 얘기다. 생산성이 그만큼 향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건비가 올라가면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임금 수준은 선진국보다 크게 높은 편이다. 2011년 한국의 1인당 GDP 대비 제조업 임금수준은 1.44배로 독일(1.21배), 영국(1.10배), 미국(0.85배)뿐만 아니라 일본(1.35배), 대만(0.88배)에 비해서도 높았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한국의 이 비율은 1.73배까지 치솟는다.

◆“줄줄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이처럼 갑작스러운 임금 인상은 국내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경기침체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1분기까지 8분기 연속 0%대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인건비 상승→생산성 악화→투자와 고용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박근혜정부가 국정 핵심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고용률 70% 달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인건비가 비용의 50%를 넘나드는 국내 제조업 여건상 고용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산업 공동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오늘(19일) 현대자동차 주가가 통상임금 이슈로 폭락했지만 이 문제는 개별기업들의 주가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어느 날 갑자기 인건비가 2% 이상 오르게 되면 상당수 기업들이 한국에서 사업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예진/정종태/양병훈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