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백화점, 대형마트, 인터넷쇼핑몰 등 대형 유통업체의 횡포로부터 중소 납품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중소 납품업체 옴부즈만’ 제도를 3월 중 도입하기로 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을 대상으로 사실상 ‘준법감시인’을 두겠다는 얘기다.

◆초강력 ‘원샷’ 규제

공정위는 29일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유통거래 공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공정위가 구상하는 옴부즈만제는 중소기업중앙회 등 납품업체 관련 단체가 추천한 민간 전문가 중에서 공정위가 유통업태별·상품부문별로 임명한다. 총 30여명으로 구성한 이들 옴부즈만은 중소 납품업체로부터 피해를 접수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공정위에 통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실상 준조사권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이와 별도로 표준거래계약서를 고쳐 인테리어비, 광고비, 물류비, 판촉사원비 등 각종 추가 부담에 관한 기준을 손질하기로 했다. 납품업체에 이중 부담을 주는 판매장려금도 줄이기로 했다. 대형 마트는 납품업체의 상품을 사들인 뒤 일정한 수수료를 붙여 판매하면서 납품업체 매출의 일부를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가져간다. 이를 최소한으로 막겠다는 얘기다.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의 판촉사원을 요구하는 행위도 엄격히 제한한다. 대규모 유통업법은 판촉사원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지만 예외 허용 사유가 너무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백화점 매출의 75%가량을 차지하는 특약매입거래도 축소를 유도하기로 했다. 특약매입거래는 백화점이 납품업체에서 외상으로 물건을 구입한 뒤 판매실적이 나쁘면 반품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방안들은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판매장려금 억제, 판촉사원 파견, 인테리어비 전가 등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를 한꺼번에 손질하겠다는 의도다.

◆업계 “너무 심하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들은 “공정위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의식, 지나치게 무리한 정책들을 쏟아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특히 ‘중소 납품업체 옴부즈만’에 대한 불만이 높다. 이 제도는 정부가 업계를 상시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정부와 민간 기업 사이에 신분과 역할이 어정쩡한 기구를 둔다는 점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있으면 공정위가 직접 제재하면 될 일을 갖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이중삼중으로 대기업을 옥죄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며 “옴부즈만의 개별적인 조사에 일일이 응할 경우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의 경쟁당국 가운데서도 민간 기업의 활동을 상시 감시하는 옴부즈만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없다. 옴부즈만은 원래 정부 관료들의 불법 행위나 부당한 행정 처분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을 구제할 목적으로 도입하는 제도인데 이를 기업 감시에 활용하는 것은 최악의 발상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판촉사원 파견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반발 기류가 강하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공정위는 ‘납품업체 의사에 반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판촉사원을 파견하는 것을 막겠다’고 밝혔지만 판촉사원 파견은 납품업체가 스스로 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요즘 공정위 활동을 보면 산만하다는 느낌이 든다”며 “경제민주화를 의식해 기업 간 거래 등 정부가 나서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지나치게 끼어드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주용석/유승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