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인형女, 쇼핑몰 차린지 3개월 만에 月 3억 '대박'
홍콩으로 여행 갔을 때 화려한 네온싸인과 빌딩 숲 사이로 밤하늘에 레이저가 쏘아졌다. 그 레이저는 바로 삼성의 로고였다. 타향의 밤을 수놓은 국내 브랜드의 위용을 보며 신수진 대표는 자신도 이처럼 글로벌한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잘나가던 웨딩 플래너의 일을 그만두고 작은 쇼핑몰로 시작해 지금은 두 개의 회사를 가진 젊은 여성 CEO 신수진 대표. 초반부터 그의 결단력과 트렌드를 파악하는 정확한 눈으로 빠르게 성장해 글로벌 브랜드 런칭까지 꿈꾸는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쇼핑몰 사업으로 대박난 사람들도 많지만 거의 대부분은 사업실패로 돌아가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이렇게 쉽지 않은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준 그의 파워는 무엇일까. 벌면 쓰기는커녕 투자에 투자를 거듭하고 남들이 성공했다 여길 즈음 다시 MBA 경영 수업을 시작해 학생으로서 공부도 병행하는 등 끝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일궈낸 성과다.

그의 스토리를 듣는 내내 시원스러운 외모와 호탕한 성격과는 달리 낮고 차분하게 이어가는 언변에서 그의 단단함과 카리스마가 느껴져 글로벌 브랜드의 탄생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오션 공략, 3개월 만에 日평균 800~900만원 매출 기록

신 대표는 웨딩 디자이너를 거쳐 웨딩 플래너로 활동했다. 웨딩 플래너로 활동할 당시 활발한 성격탓에 스스로 즐겁게 일했고 스카웃 제의도 받는 팀장으로서 나름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러다가 유난히 애착을 가졌던 부부가 방문을 했는데 임신부인 그녀에게 옷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고를 임부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임부복 시장이 블루오션임을 직감해 딘트 스타일을 오픈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서른이 되기 마지막 12월, 엑셀이나 포토샵 등을 전혀 다루지 못했던 컴맹이 짧은 시간 동안 포토샵을 직접 독학하고 사이트도 혼자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준비를 해나갔다. 그 후에도 혼자 모든 것을 도맡아 한 두 시간 정도만 잠을 자는 강행군에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고생의 연속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곧 좋은 성과를 올렸고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3개월 만에 하루 평균 8~9백 정도까지 매출이 올랐던 것. 당시 임부복은 펑퍼짐하고 촌스러운 디자인뿐이었지만 그는 순수히 일하는 임부들을 위한 디자인을 제안, ‘임신부 전문 오피스룩’이라는 새로운 타겟의 니즈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얼짱 인형女, 쇼핑몰 차린지 3개월 만에 月 3억 '대박'
나의 스타일, 차별화된 콘셉트 구축

임부복으로 승승장구 하던 중 시장의 한계성을 느낀 신수진 대표는 3년 후 오피스룩 전문 사이트인 딘트를 오픈했다. 앞서 구축했던 전략과 노하우를 기초로 비교적 빠르고 쉽게 전개해 나갔지만 딘트 스타일과는 달리 오피스우먼들을 위한 여성복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하지만 여기에 ‘럭셔리’라는 콘셉트를 접목, 신대표 특유의 컬러를 담았다.

그의 경쟁력은 타 업체와 비슷한 아이템이나 스타일링으로도 촬영 콘셉트를 화보처럼 완전히 독특하게 연출해 차별화를 둔 것이다. 스타일링에 가장 투자를 아끼지 않고 신 대표가 직접 관여한다. 그 많은 의상을 직원들과 함께 전부 피팅해보고 액세서리, 신발, 백, 심지어 스타킹까지 미리 코디한다.

또한 제품 중 퀄리티가 뛰어난 것만 엄선하면서도 최대한 거품을 뺀 가격으로 부담감과 실망감을 최소화하도록 했으며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전개한 만큼 이 또한 고객 만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직원 관리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이직률이 높은 이쪽 업계의 특성 때문에 직원 채용시 회사 분위기와 성향이 잘 맞아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도 특별한 그만의 직원 관리 노하우였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연차, 경력 체제를 확실히 도입하고 앞으로는 수유실이나 육아휴직 등 복지까지 전개할 예정으로 타 업체와는 확연히 다른 체계적인 시스템을 자부하고 있다.

MBA 학생 vs 사업가

기업식 직원 관리 뿐만 아니라 사업 전반에 대해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사고력을 갖게 된 것은 그가 경영수업을 듣게 되면서다. 주변에 비슷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는데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이들과는 달리 나부터 격을 높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예전에는 몰라서 못했던 부분에 대해 작은 부분만 수정하면 되는 확실하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알게 되면서 더욱 전문적인 사업 구조를 꾸려나갈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전에는 직원들과 직접 상담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보고서를 작성해서 같이 분석하고 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회사의 발전과 함께 직원들에게 하여금 긴장감을 조성함으로써 직원과 회사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신수진 대표는 학업 병행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꼽고 있다. 사업을 체계적으로 꾸려나가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도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큰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얘기를 많이 듣는 것만으로도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주로 회사 간부. 경영을 이어받을 분들이 다니다 보니 그분들과의 대화, 조언을 통해 얻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에게는 인생의 큰 교훈이라 여기고 있다.

배우는 것에 흠뻑 빠진 신 대표는 까페에서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평균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는다는 것이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할 초반의 고생에 비하면 지금의 피곤함은 오히려 행복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끝없는 자기 계발로 인해 그릇이 커질수록 더욱 큰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얼짱 인형女, 쇼핑몰 차린지 3개월 만에 月 3억 '대박'
“회사가 크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잖아요. 앞으로도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여러 명의 사람들과 같이 뭔가를 해나가는 자체에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어요”

신 대표는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성공에 가까워져 간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행복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때 할 수 있는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이 후에는 그림을 그리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는 소박한 희망을 전하기도.

사업 철학 역시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이곳이 하나의 회사가 아닌 사회성을 길러주는 곳”이라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배워나가며 그들이 사회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직원들에게도 무엇이든 즐기면서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항상 조언한다. 즐기지 않는 일은 병을 주는 일일 뿐,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또한 사업을 시작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이 생겼다. 금천구 가산동 청담복지관의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고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키로 하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회사근처에서 봉사활동 할 수 있을만한 곳을 찾다가 청담 스님이 운영하는 이곳과 인연이 닿은 후로 어린이 합창단 후원 뿐만 아니라 수시로 소외계층이나 기초 생활 수급자들을 위한 봉사활동, 지역구민을 위한 바자회에 옷을 협찬하는 등 항상 염원해 왔다던 사회환원에도 힘쓰고 있다.

이처럼 그는 언제나 자신보다는 직원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아우를 줄 아는 CEO였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며 포부를 함께 드러낸 것. 글로벌한 기업으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신수진 대표의 최종 꿈이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