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판사, 애플의 영구판매금지 요청 기각
최종 승부는 배상금 관련 판결서 갈릴 듯

삼성전자가 17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미국 법원에서 이뤄진 특허소송 1심 최종판결에서 애플이 강력하게 주장해 온 삼성 제품의 영구판매금지 요청이 기각됨에 따라 이른바 '애플의 안방'에서 사실상 중요한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원이 이날 삼성전자가 그동안 주장해온 배심원장 벨빈 호건의 비행 부분에 대해서도 기각해 외형상으로는 한판씩 주고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제품의 영구판매금지조치가 가지는 무게를 감안할 때 최소한 판정승은 거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 북부지방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삼성제품 26종에 대한 영구판매금지와 관련해 애플이 특허침해를 한 삼성 제품이 아이폰 판매에 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그는 "애플이 삼성 때문에 고객을 잃고 매출이 줄었다는 사실이 영구판매금지 가처분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며 "삼성이 애플의 고객 기반을 일부 줄였을 수 있지만 삼성이 애플의 고객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거나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몰아낼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플로리안 뮐러는 자신의 블로그 포스페이턴츠에 이날 내려진 최종판결 결과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가 사실상 승리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배심원들이 특허침해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이뤄졌다고 인정한데다 양사가 경쟁위치에 있고, 침해도 '의도적(willful)'으로 이뤄졌다고 평결했는데도 이처럼 판매금지요청이 완전히 기각된 예는 미국 법률사상 전례가 없는 일로 보인다"며 "삼성 변호인 측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성공"이라고 했다.

뮐러는 이어 "배상액이 10억 달러가 넘어 일반 기업의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 될 수 있지만 애플 뿐 아니라 삼성전자도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이 정도 배상으로는 삼성전자에 별다른 영향을 주기 힘들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지난 8월 평결이 상징적인 가치만 가진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재심의나 내년부터 같은 법원에서 본격화될 본안 2차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본안 2차 소송에는 갤럭시S3 등 현재 주력제품들이 포함돼 있다.

사실 애플은 올해 내내 미국 법원에서 삼성전자에 몇 차례 중요한 승리를 거두면서 삼성전자를 압박해 왔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태블릿PC 갤럭시탭 10.1과 구글과 함께 제작한 스마트폰 갤럭시 넥서스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낸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삼성전자에 10억5천만달러의 거액을 배상하라는 평결도 받아냄으로써 사실상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애플은 이 같은 여세를 몰아 침해가 인정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26종에 대해 영구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던 것.
하지만 갤럭시 넥서스 판금이 항소심에서 원심파기된데다 이번에 중요한 고비에서 고배를 마신 셈이 됐다.

애플은 곧바로 항소할 것으로 보여 항소심에서 양사가 다시 한 번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고 판사는 이와 함께 배심원장 벨빈 호건이 삼성에 부정적인 인상을 가질 수 있는 과거 법정소송 경력을 감춘 사실과 관련해 배심원의 부적격 행위(Misconduct)에 대해 심리해 달라는 삼성전자의 요청도 기각했다.

하지만 미 법조계에서는 배심원들의 평의 과정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미국 법원의 속성상 호건의 자격 논란으로 재심을 하거나 기존 평결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었다.

마지막 주요 쟁점은 배상액 부분.
삼성전자는 지난 6일 갤럭시 프리베일 등에서 배상금 산정을 잘못한 것을 비롯해 전체 배상금 10억5천만달러 가운데 배상액 9억 달러 정도는 잘못 산정된 것인 만큼 감액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애플은 지난 8월 배심원들의 평결 배상금에다 디자인 특허에서 4억 달러, 기능 특허에서 1억3천500만달러 등 총 7억700만달러의 추가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애플은 게다가 특허침해의 '고의성'이 인정되는 만큼 배상금의 3배까지 받아낼 수 있는 징벌적 배상까지 기대하고 있다.

루시 고 판사는 최종심리 과정에서 배심원들이 특허침해와 관련된 배상금 산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언급을 해 배상액을 일부 감액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고 판사가 감액 규모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 아닌데다 징벌적 배상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판단을 할 예정이어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비록 영구판매금지요청 기각으로 승기를 잡기는 했지만 배상금 관련 판결에서 최종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 판사가 사안이 많고 복잡한 점을 감안해 사안별로 판결을 내리고, 이달 중 일부 사안에 대해서만 판결을 할 것이라고 언급해 배상금 관련 판결은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nadoo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