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통 큰 국회, 쪽지예산이 너무 적었나?
기업 비상경영에 정치는 아랑곳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최근 국회를 보면 대형유통사의 통 큰 상술이 생각난다. 대선 정국을 맞아 국회 전체가 부작용을 모르는 바 아니나 통 크게 한 탕 벌여 효과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보이기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쯤 예산철이 되면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지역구 예산 늘리기가 있어왔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앞에서 큰소리로 호통치던 의원들이 너도 나도 쪽지에 지역구 예산을 적어 해당 장관에게 들이미는 소위 ‘쪽지예산’도 흔히 있어왔던 일이다. 그런데 이번 국회는 쪽지예산으로는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지 통 크게 나오고 있다. 여야 따로 없이 재정부담은 고려하지 않고 유권자 표를 노린 조(兆) 단위의 대선용 선심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15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시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국토해양위의 대중교통법 개정안 통과는 버스업계의 파업 으름장으로 수면 아래로 잠복했지만 택시가족에게는 확실한 마케팅 효과를 거두었다. 군 공항이전법도 국가 안보와 현실적 문제는 생각지 않고 지역구 표만 의식해 국방위에서 통 크게 통과됐다. 심지어는 모범을 보여야 할 국회 의장단과 정당 대표들까지 통 큰 포퓰리즘 입법 대열에 가세했다.
이런 통 큰 의원 활동이 각 상임위에 반영돼 이번 예산안에 무려 12조원에 달하는 증액요구가 있었다. 국민을 대표해서 행정부의 재정지출을 감시 견제해야 하는 본분을 잊고 쓰는 데 열중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이번 주부터 예산결산특별위 계수조정소위가 가동돼 각 상임위에서 넘어온 예산안에 대한 심사를 한다지만 솔직히 기대난망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법정시한인 12월2일에 처리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양당 대표가 지난 8월에 대통령 선거일정을 감안해 올해는 11월22일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믿은 게 바보인 듯 싶다.
기획재정부 분석에 따르면 현재 상정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차기 정부 5년간 최소 40조원에서 최대 70조원의 재정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단다. 2005년 7월부터 의무화된 의원입법안에 대한 비용추계 첨부율이 16대 국회 3.0%에서 17대 국회에는 21.7%, 18대 국회는 32.1%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형식에 그치고 있다. 이번 19대 통 큰 법을 발의한 의원들이 비용추계를 제대로 첨부했는지 묻고 싶다. 행정부의 재정지출을 견제해야 할 입법부의 재정지출 결의를 행정부가 막아야 하는 상황이니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다.
지난주 한국개발연구원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2.2%, 3.0%로 또 다시 낮춰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글로벌 기업들은 계열사를 줄이고 설비투자를 축소하는 등 비상경영을 선언한 상태다. 대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면 연관된 중소기업의 고충은 배로 늘 것이다. 1000조원 돌파를 앞둔 가계부채 문제도 단시일에 해결되긴 어렵다.
새 대통령이 어느 당에서 나오든 경제는 어려울 것이고, 경제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집권당 의원의 재선은 물 건너간다는 것이 의원들 스스로의 자조 섞인 이야기다. 그래서 통 크게 지역구 예산이라도 더 챙겨야겠는지 모르겠다. 의원들은 예산심의가 의무이지 소속 당의 정책실현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혈세 342조5000억원이 어떻게 쓰이는지 국민이 눈 크게 뜨고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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