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변동 위험을 헤지하는 파생상품 키코(KIKO) 소송이 확대될 조짐이다. 최근 키코로 손해를 본 한 중소기업이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며 상당수 기업이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설명 의무를 위반한 은행이 키코 계약으로 인한 피해액의 60~70%를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지난 8월 법원 판결에 영향받은 것으로, 추가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젠 이길 수 있나’ 소송 관심 늘어

6일 법조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제금속은 최근 신한은행을 상대로 “키코로 입은 손해 중 일부인 3억원을 손해배상하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국제금속은 “키코 상품을 팔면서 은행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키코로 손해를 본 다른 중소기업 4~5곳이 변호사를 선임해 곧 소송에 들어갈 예정이며, 소송 제기를 검토 중인 회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최승록)에선 아이테스트가 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1억원 반환 소송, 코텍이 씨티은행과 홍콩상하이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11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측은 “소송을 포기했던 기업들의 문의가 지난 8월 판결을 계기로 증가했다”며 “키코 피해 기업이 700개가 넘었으나 소송을 낸 기업은 약 200곳에 그쳤기 때문에 추가 소송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8월23일 판결이 도화선

올 8월2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는 엠텍비젼 테크윙 온지구 ADM21 등 4개 기업이 씨티은행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키코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 판결은 기업 손해액의 60~70%를 은행이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과거 판결과 달리 은행의 책임을 대폭 인정해 파장을 일으켰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키코 같은 금융투자상품의 경우 판매자(은행)는 투자자(회사)의 이익·손해와 관련된 주요 내용에 대해 판매자가 아는 만큼 투자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며 “설명 후에는 투자자가 부담해야 할 위험을 충분히 이해했는지 확인해야 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상품을 판매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키코 대책위에 따르면 이날 판결 이전에 1심 판결이 난 195개 기업의 소송 중 은행에서 일부라도 배상받게 된 곳은 37곳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패소했다. 일부 승소한 기업들도 피해액의 10~50%를 배상받는 선에서 그쳤다.

■ 키코(KIKO)

일정 기간의 환율에 따라 기업과 은행이 달러와 같은 외화를 사고팔 권리를 갖는 파생금융상품. 계약한 것보다 환율이 상승하면 기업이 손해를 보게 된다. 환율 상승 시 계약 금액의 2~3배를 시장 환율보다 낮게 은행에 팔아야 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환율 폭등으로 손해를 보게 된 중소기업들이 대거 소송을 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