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제조업체 D사는 올해 초 국민은행의 ‘사이버 브랜치’에 가입한 뒤 자금 관리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 회사는 그동안 전국 10여개 은행과 거래하며 100여개의 계좌를 갖고 있다. 자금 현황을 파악하려면 경리부 직원들이 계좌 수십 개씩을 맡아 해당 은행 인터넷뱅킹에 접속해 일일이 잔액을 조회하고 합산해야 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의 사이버 브랜치를 이용하면서부터는 전담 직원 1명이 간단한 프로그램 조작으로 계좌별 잔액과 총액을 모니터에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은행에 흩어져 있는 계좌에서 동시 출금할 수 있고, 사전에 정해진 시간에 모든 계좌에 입금된 금액을 한 계좌로 자동으로 모을 수도 있다.

시중 은행들이 ‘사이버 브랜치’를 앞세워 기업 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적지 않은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기업 관계사와 협력업체까지도 고객사로 끌어들이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사이버 브랜치란 기업의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와 연동해 은행에서 제공하는 각종 금융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기업 내에 설치한 가상점포를 말한다.

국민은행은 2005년 처음 사이버 브랜치를 선보인 뒤 지금까지 1600여개 기업에 구축했다. 이를 통해 매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국민은행은 앞으로 사이버 브랜치를 활용해 기업금융 시장에 대한 공략을 한층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기업은행은 △공공기관 대상의 ‘인-하우스 뱅크’ △대기업 중견기업용 ‘e-브랜치’ △중소기업 전용 ‘sERP’ △정부부처 연구기관 대학교를 겨냥한 ‘R&D CMS(자금관리서비스) 등 네 가지 사이버 브랜치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e-브랜치는 기업이 거래하는 모든 금융회사의 수시입출·당좌·외화·증권·대출계좌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전자무역서비스 및 맞춤보고서 등 업종별 특화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현재 4500여개 중견·대기업이 사용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0년 3월 기업 통합자금관리 서비스인 ‘인사이드(inside) 뱅크’를 내놓은 데 이어 이달엔 개인 사업자 및 소규모 기업을 겨냥한 ‘인사이드 뱅크 라이트(lite)’를 출시했다.

우리은행도 ‘기업 속의 은행’으로 불리는 자금관리 서비스 ‘WIN-CMS’를 통해 기업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힘쏟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총 5만8504개 기업이 이 서비스에 가입했다.

은행들이 사이버 브랜치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것은 기업금융의 초점이 과거 대출 비즈니스에서 ‘트랜젝션 뱅킹(transaction banking)’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트랜젝션 뱅킹은 외환거래 자금결제 채권발행 등 각종 재무거래를 은행이 대행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대출에 비해 순영업 마진이 높아 선진 은행에서는 투자은행(IB) 업무와 함께 기업금융의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잡았다.

황시연 국민은행 e-뱅킹사업부 팀장은 “기업대출 비중이 점차 감소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는 통합자금관리 시스템 등 트랜젝션 뱅킹 비즈니스가 기업금융의 새로운 수익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