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유럽의 재정위기 '한파'로 초여름 여의도 증권가(街)가 한가롭기까지 하다.

3년 전 금융위기 학습효과로 인해 이제 상장기업들의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평가) 매력은 더이상 투자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유럽의 재정위기 해결 이후 'G2(미국, 중국)'의 경기가 되살아나면 그간 낙폭이 큰 업종부터 탄력적인 반등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연일 고꾸라지는 주가 탓에 덩치(시가총액)가 작은 중·소형주(株)들의 경우 대주주의 지분 매각설(說), 담보물량 반대매매 등 확인되지 않은 흉흉한 루머에 시달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이슈가 다시 불거지면서 코스피지수는 이달 중순 급기야 작년말 수준이던 1770선까지 밀려났고, 스페인 등 주변국으로 위기확산이 우려돼 변동성만 높아진 게 국내 증시의 현 상황이다.

으레 기업분석 임무를 맡고 있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일감도 줄어들고 있다. 미리 주가분석을 해놓은 해당기업의 주가가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무관하게 급락세를 타면서 투자의견 및 목표주가 등 주요 투자지표 등이 분석 범위에서 벗어나 있어서다. 이에 따라 'Not Rated(미평가)' 보고서도 자주 등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선임 애널은 "주변의 애널들이 '종목 추천'이란 본연의 임무를 게을리 한 지 오래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일수록 실제 기업들의 현장 분위기를 스케치 해주려는 시도가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목표주가가 없는 'Not Rated' 보고서와 함께 '탐방 보고서'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 이 애널은 "대외 악재로 증시상황이 악화될 경우 직접 주식으 매입하는 매니저들 역시 개별기업의 뉴스보다 전반적으로 전방업계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고 싶어한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스몰캡 애널도 "약세장이 지속되면서 '모닝 미팅' 내용이 이전보다 상당히 짧아졌다"며 "그만큼 준비중인 기업분석 보고서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재 애널들은 대부분 모닝미팅 이후 담당 업체를 탐방하며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게 이들 애널의 전언이다. 임원 등 경영진은 물론, 현장 관리인까지 직접 만나본 뒤 좀 더 생생한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이상윤 동양증권 스몰캡 애널은 "'요즘 시장이 어렵다'는 애널들의 얘기는 뚜렷한 주도주가 없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 현대차 등 일명 전·차(電·車)가 이끌어왔던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들의 주가하락으로 인해 펀드 매니저들조차 앞으로 부진한 수익률을 만회할 기회가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