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대 10’. 4·11 총선에서 첫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검·경 출신 출마자 숫자다. 수사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해온 검·경이 새내기 의원 배출을 놓고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번 총선에 대한 열기는 경찰 쪽이 한층 뜨겁다. 검찰은 대규모로 국회에 입성해 온 반면 경찰은 간헐적으로 국회에 진출해 왔기 때문이다.

16대 때 5명, 17대 때 4명이 겨우 금배지를 달긴 했다. 당시만 해도 경찰청 차장 등 수뇌부보다 일선 경찰서장급인 ‘경량급’이 주로 출마했다. 당선된 뒤에도 전국 10만 경찰들이 국회에서 기대했던 역할을 해내는 데 한계가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찰 출신 ‘에이스’들이 총출동했다. 경찰청장 출신 2명, 본청 차장, 지방경찰청장 등을 지낸 ‘중량급’ 후보들이 포진했다. 경찰대 출신, 외무·행정고시 출신 등 ‘빵빵한’ 스펙을 갖춘 엘리트 경찰들이 대거 나섰다.

이 때문에 이번에 나선 후보들이 당선된다면 여의도 입성 후에도 이전처럼 단명하지 않고 꾸준히 의정활동을 하리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총선 성적표’가 시원찮아 검찰과의 ‘수사권 전투’에서 매번 밀려났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경찰에 입법부 진출은 단순히 입신양명의 수단이 아니라 수사권 정상화를 위한 필수 요건이자 조직 차원의 ‘염원’인 셈이다. 경찰이 절박한 심정인 반면 총선을 대하는 검찰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편이다. 판·검사 이력은 여의도로 가는 보증수표인데다 역대 총선에서도 압승을 이어갔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법조인 30여명이 당선된 이래 총선 때마다 적게는 40여명, 많게는 60여명이 입법부에 진출했다. 18대 새누리당 의원만 봐도 안상수·홍준표 전 대표, 권영세·원희룡 전 최고위원 등 18명이 검사 출신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은 30여명을, 야권은 40여명의 율사(律士)를 주요 지역에 후보로 내놨다. 검찰 출신은 여전히 각 당의 ‘영입 0순위’다.


◆警, 스펙 갖춘 ‘중량급’ 대거 출마

경찰은 공천 과정에서도 검찰에 밀려왔다. 부장검사나 평검사 이력으로도 공천을 따낼 수 있는 검찰과 달리 경찰청장 출신도 낙천하기 일쑤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 즐비한 검찰에 비해 ‘스펙’이 낮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검찰은 당선 가능성은 물론 학력, 이력, 연고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공천 과정에서부터 엘리트로 인식된다. 앞서 포진한 선배 법조인들이 직간접적으로 끌어주는 검찰과 달리 경찰은 그동안 각 당의 영입 대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내 최대 공무원집단인 경찰의 국회 진입률이 낮았던 배경이다. 이번 선거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긴 한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60·새누리당·서울 노원병)을 필두로 △박종준 전 경찰청 차장(48·새누리당·충남 공주) △윤재옥 전 경기지방경찰청장(51·새누리당·대구 달서을) △서재관 전 인천지방경찰청장(66·민주통합당·충북 제천단양) △최석민 전 충북지방경찰청장(63·정통민주당·경기 광주) 등 5명이 각 당의 공천을 받았다.

다만 박영진 전 경남청장, 조무호 전 대구북부·중부경찰서장, 박광순 전 분당경찰서장, 강대형 전 경찰청 생활안전국장 등은 낙천했다. 경찰대 출신 2명(1기 윤재옥·2기 박종준)의 여의도 입성 여부도 관심 대상이다. 경찰 출신 후보들의 경쟁자는 만만찮다. 김석기 후보는 육군 장성 출신이자 현역 의원인 정수성 새누리당 후보와 격돌한다. 허준영 후보는 노회찬 야권단일후보와 맞붙는다. 18대 총선 때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한표 후보는 검사 출신 진성진 새누리당 후보와 대결한다.


◆檢 ‘영입 0순위’…12명 중 11명 공천받아

경찰 쪽에서는 경찰청장이 2명이나 나선 반면 검찰총장이나 대검 차장 등 검찰 수뇌부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대부분 부장·차장검사거나 그도 아니면 평검사 출신이다. 그런데도 검찰 출신 후보자는 12명 중 11명이 각 당의 공천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에서는 △김회선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57·사시20회·서울 서초갑) △김상도 전 의정부지검 차장검사(54·사시25회·경기의정부갑) △유영하 전 인천지검 특수부 검사(50·사시34회·경기 군포) △정준길 전 대검 중수부 검찰연구관(46·사시35회·서울 광진을) 등 9명을 공천했다.

민주통합당에서는 노관규 전 대검 중수부 검사(42·사시34회·전남 순천곡성), 자유선진당에서는 윤형모 전 인천지검 부장검사(54·사시23회·인천 연수)를 각각 공천했다. 김형순 전 대구서부지청 부장검사(51·사시28회)는 강원 동해삼척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김상도·유영하·정준길 후보는 나란히 ‘총선 재수’에 도전했다. 감사원장 물망에 올랐다 낙마한 정동기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은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하려다 낙천했다. 박종환 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경남 진주을)도 공천을 못 받아 뜻을 접었다.

김인원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서울 중구), 최성칠 전 전주지검 수석부장검사(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 등은 민주통합당 공천을 노렸으나 낙천했다.

경찰에 비하면 공천에서 유리한 편이지만 전체 법조인 비율은 예년에 비해 낮아졌다. 새누리당은 ‘법조당’이란 비판을 의식한 듯 법조인 30여명에게만 공천을 줬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법조인 40여명에게 공천을 줘 ‘새로운 법조당’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책전문가’ 아닌 ‘공격수’ 배치… 전문성 퇴보

검찰 출신이 정계에서 환대받는 이유는 법을 잘 알면서도 수사 실무를 꿰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정무 감각도 대체로 좋은 편이라 정계의 환영을 받아왔다. 종종 ‘수사 대상’이 되거나 ‘수사를 촉구하는 주체’가 되는 정계에서는 꼭 필요한 인재라는 인식이 강했던 점도 각 당이 경쟁적으로 검사들을 영입해 온 이유다.

각 당은 표면적으로는 “법률전문가를 영입하겠다”며 검찰에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검찰 출신 의원들은 국회에 진입하는 순간 ‘저격수’로 바뀐다. 초선 시절부터 전방위 공격수였던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적인 예다.

‘정책’ 강화를 표방하며 영입한 전문가그룹의 역할이 실제로는 ‘정치공세용’으로 한정되는 셈이다. 한 정당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을 두고 검찰과 대립할 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검찰 출신이 요긴하다”며 “특히 상대당에 공세를 펼 때 검찰 특유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 영입해왔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 의원들이 자의반 타의반 이같이 활용되면서 경찰의 국회 진출까지 부정적으로 보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의 입신양명, 또는 이익단체의 대표로 자리매김할 게 뻔하지 않느냐”는 게 비판론의 요지다.

‘검찰개혁’이란 명분 아래 율사들을 대거 영입한 민주통합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한 당직자는 “검찰을 개혁하려면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너무 잘 알면 오히려 칼을 뽑기 어렵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